제27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꿈)외 4편

by 양종현 posted Jan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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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코미디언의 민낯을 보았다
먹고 살려면 가면을 써야지
소비자의 부당한 항의전화에
일개 알바들은 침묵해야 하지 

미소를 찾으려는 건지
고독을 깎아내려는 건지
어느 누구의 미소를 호의를 구걸하던 날,
어느 늦은 밤에 뒤흔들리는 비틀거리는 나는
당연한 인과관계인 걸 

품에 남은 게 얼마 없구나
언제쯤 가슴이 불러볼까
소망은 빈 속을 변비약으로 채운다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부터 낭떠러지로 떠민다 

처진 어깨를 슬며시 토닥여주는 손이 없다
아 내가 힘듭니다 해도 들어주는 귀가 없다
아무도 나의 맨얼굴을 보았다는 눈이 없다 

가면 뒤의 얼굴도 가면이었으니까?
나는 코미디언이 아닌데?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을 이렇게 내뱉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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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파는 사람

힘을 가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상처입는다 

해치지 않는 세상 위해
머리맡 서성거리는
바퀴벌레를 보내주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 될까 봐
가족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개미가 밟혀 죽을까
바닥을 살피고 다녔다 

실없는 농담하면
아무도 아프지 않겠지 

시선이 느껴지지 않게 해야지
불쾌해할지도 모르니까 

후우우우 이제 씻고 자야지
새까매진 몸을 닦고
눈을 감았다 

친구가 된 개미와 바퀴가
콧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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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무기

응달에 간직되어
말라가던 날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둔부가 손바닥에
퐁퐁 치대지다
목이 화들짝 비틀려
숨이 막혔다 

이내 목이 반대로
휭구르르 돌더니
숨이 돌아오고
몸은 천근만근 

가누기 힘들어
옆으로 쓰러지니
데구르르르 덥썩
흰 천이 몸을 감쌌다 

그 날 이후
구겨진 청바지에
접힌 셔츠에
이름 모를 풀에
주인과 내 얼굴에
메마른 곳에 

마음껏 침 뱉고
재채기를 일삼았다 

허공을 적시니
햇살 뒤 무지개
수줍게 떠올랐다 

빨주노초파남보
그 사이사이 숨은
모습까지 보려고
에취에취잇에칫에취에취 

무지개 철창 뜯어버리고
무명의 자태들 하나씩
이름 지어볼까 

모두가 젖어버렸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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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토익은 내일 하자
이불에 몸을 맡기자 

발표가 끝나갈 즈음
아는 선배가 손을 들었다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별로라 했다
발표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가 고생했다며
눈웃음 쳤다

귀갓길 왠지 아쉬워
동전 모아 노래를
부르러 갔다
내 애창곡은 어디 갔는지
뱉을 이야기가 없었다
간식같은 유행가 오백원 어치
팔아주고 그냥 왔다 

문득 거울이 보였다
아침에만 보던 내가
표정없이 앉아 있군
어머,
방금 씻고왔는데
입가엔 치약
눈가엔 눈곱이
쓸려와 매달려 있었다 

로션은 기겁을 했겠다
그들과 버무려질 뻔 했으니
아니,
이미 많은 밤
몸을 섞었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아침에 거울을 보고
밤새 무슨 난리를 피우며 잤는지
아주 잠깐
의문을 가졌겠지 

내일은 열두 시까지 자야지
그는 내려앉는 눈꺼풀을 더 이상 이겨낼 수 없다
비타민 몇 알을 입에 털어 넣는다
식도를 타고 내려갈 시간도 아까워 한다
눕는다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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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혼자 걷기를 즐겼지만 문득
혼자라는 게 느껴질 때는 아픔이 찾아왔고
가수가 꿈이던 나는 모두 잊고 어느새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 받기만 했다
수없이 사랑받으려 노력했지만 그것은
주인이 필요한 분무기 같은 삶이었고
비 오는 날에 외출을 삼가던 의지는
품질보증기간 지난 배터리 같은 삶이었다 

한 줌 부끄럼 남기지 않으려
부끄럽게 살고 있었다 


응모자명: 양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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