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27차 콘테스트 할머니의 담배 외 4편

by 신유르디올 posted Jan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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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담배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골초다

몇 안 남은 이로 희고 가는 담배를

아슬아슬하게 물고 있다

폐가 다 감당하지도 못할 연기를

함뿍 들이마셨다가

옅은 숨으로 내뱉는다

가진 만큼 내놓지 못하는 게

노인네의 욕심이라

담배 연기마저도 다 꺼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담아둔다

딱 오늘까지만 피울거다

줘도 안 가질 약속을 비싼 값에 내놓는게

노인네의 자존심이라

담배 끝으로 세월을 태우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타버린 재를 흩뿌린다

이름 모를 바람에 그 재가 다 날아가 버리면

마치 잘 도착해서 기특하다는 듯

허공에 안도한다

 

쓰다

 

한 입 베어 먹었다

아 쓰다

두 입 베어 먹었다

역시 쓰다

도자기 그릇에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귀찮도록 귀를 긁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다

 

한 글자 겨우 쓴다

글자 하나를

띄어쓰기 하나를

꼭꼭 씹어 먹는다

아 쓰다

글자 옆에 한 글자 더 쓴다

두 글자를 잘근 씹는다

역시 쓰다

볼펜심이 종이 위를 굴러 다닌다

사각사각

돌부리도 없는지

매끄럽고 현란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쓴다

마지막 글자를 올리지 못하고

아 쓰다 결국 쓰다

 


간밤

 

거울을 보니

모가지께가 헐거워있다

간밤에 휘몰아친 일

흔적들 가운데 하나

소리도 잠든 저녁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할퀴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기억을 끌어다 닦아내었다


 

장미와 민들레

 

내가 느끼기에

우리의 차이는 고작

장미와 민들레일뿐이다

누군가는 너를 좋아하겠지

또 다른 이는 나를 좋아하겠지

너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고작의 차이를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는

장미와 민들레일뿐이다

 


너의 창가에

 

인사도 없이 드나드는 바람은

기별도 없는 주제에 오고 간 티를 기어코 내고 말았다

흐트러짐이 아니라 그 작은 냄새 분자로

 

아직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일랑

서운해 말아라

오늘 밤에도 너를 데리러 오나니

또 오고 간다 인사도 없겠지

나는 하나도 섭섭하지 않아

일부러 창을 열어두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