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담배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골초다
몇 안 남은 이로 희고 가는 담배를
아슬아슬하게 물고 있다
폐가 다 감당하지도 못할 연기를
함뿍 들이마셨다가
옅은 숨으로 내뱉는다
가진 만큼 내놓지 못하는 게
노인네의 욕심이라
담배 연기마저도 다 꺼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담아둔다
‘딱 오늘까지만 피울거다’
줘도 안 가질 약속을 비싼 값에 내놓는게
노인네의 자존심이라
담배 끝으로 세월을 태우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타버린 재를 흩뿌린다
이름 모를 바람에 그 재가 다 날아가 버리면
마치 잘 도착해서 기특하다는 듯
허공에 안도한다
쓰다
한 입 베어 먹었다
아 쓰다
두 입 베어 먹었다
역시 쓰다
도자기 그릇에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귀찮도록 귀를 긁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다
한 글자 겨우 쓴다
글자 하나를
띄어쓰기 하나를
꼭꼭 씹어 먹는다
아 쓰다
글자 옆에 한 글자 더 쓴다
두 글자를 잘근 씹는다
역시 쓰다
볼펜심이 종이 위를 굴러 다닌다
사각사각
돌부리도 없는지
매끄럽고 현란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쓴다
마지막 글자를 올리지 못하고
아 쓰다 결국 쓰다
간밤
거울을 보니
모가지께가 헐거워있다
간밤에 휘몰아친 일
흔적들 가운데 하나
소리도 잠든 저녁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할퀴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기억을 끌어다 닦아내었다
장미와 민들레
내가 느끼기에
우리의 차이는 고작
장미와 민들레일뿐이다
누군가는 너를 좋아하겠지
또 다른 이는 나를 좋아하겠지
너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고작의 차이를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는
장미와 민들레일뿐이다
너의 창가에
인사도 없이 드나드는 바람은
기별도 없는 주제에 오고 간 티를 기어코 내고 말았다
흐트러짐이 아니라 그 작은 냄새 분자로
아직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일랑
서운해 말아라
오늘 밤에도 너를 데리러 오나니
또 오고 간다 인사도 없겠지
나는 하나도 섭섭하지 않아
일부러 창을 열어두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