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응모_시 부문

by 너른들판 posted Jan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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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시장 11호 장판가게의 여백


두어달 전부터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소문에는 몸져 누워 못나온다 하고

도회지 큰 병원 어디에 입원했다는 사람도 있다

말들은 많아도 본 사람은 없었다


촌스런 장판 한아름에 몇십단씩 쌓여

가게안은 족히 열평도 넘었으나

매번 가게는 자꾸만 좁아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용역들은 으름장을 놓고

하나있던 아들은 젊은날 노름빚을 피해 숨어버렸다

내 품같이 피붙이들 키워낸 중원시장 삼십여년

장판가게 불이 꺼져야 같이 문 닫고

단골 대포집에서 탁주를 기울이던

한복가게 김씨 할아버지도

이제 모르는 집을 들여다보듯

주름진 눈가위에 손바닥을 얹는다




내가 아는 김석구씨


별일없이 채널을 돌리다

뉴스에 나온다 내가 아는

김석구씨는


열다섯에 서울로 와

손톱밑 물 마를 날 없이

북경반점 뒷켠 방 한칸에서

단무지 김치 반찬삼아

통장에 꼬박꼬박 숫자를 늘렸다

가난이 습관처럼 다시 올까봐

악착같이 서른이 되었다

어엿하게 제법 요리도 하고

짜장 짬뽕 가방을 가득 채워 배달도 한다

인생의 반을 가난하지 않기 위해 살아서

남은 인생 자기보다 없는 사람들 돌본다고

여기저기 보육원에 고아원에

가난이 병이 되어 모인 사람들 곁으로 간다

때로는 의지가 그를 만들고

존경의 카메라와 인터뷰가 그를 따랐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는 뉴스에 나왔다

처음 북경반점 뒷편에서

매운 눈물 흘리며 양파까던 두 손은

이제 무거운 수갑에 눌려있다

가진 것이 없어 괴물이 됐다고

그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수많은 괴물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개포 2단지 경비실에서


개포 2단지 경비실에 앉아있다

방문객은 손님 혹은 택배기사

가족이 아니면 절차가 복잡하다

내 집은

지하철 두번을 갈아타서

열 여덟 정거장

내리면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초등학교 건물을 돌아

시장 골목을 지나면

목마디 길다란 이 아파트보다

본디 낮고 자그마한 늙은 전세방

굽 낮은 구두를 신고 여기까지 왔건만

나는 경비실 네모진 방 안에서

조서처럼 신상명세 빼곡히 적고

경비아저씨가 내미는

상장같은 방문증을 가슴에 달고서야

이 번쩍이는 금빛 숲을 지날 수 있단다




별자리


별과 별 사이를 이어 만든 별자리처럼

지나간 나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도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두운 밤하늘 누구의 가슴에

첨벙거리며 물수제비 띄워 놓을 수 있을까

새벽녘 별똥별 하나 떨어지면

어딘가 묻어놓았던 아픈 추억

피딱지 떨어지듯 가슴 한 켠이 저릿한데

그맘때면 누구의 빈 가슴

띄엄띄엄 점 찍어 퐁당거리며

그리운 별자리 하나 남길 수 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밤하늘 수천의 별들을 헤아리는 것

가보지 못한 저편을 더듬거리듯

피곤한 항해를 계속하는 것

아침에도 말갛게 피어오르는

새 별빛 같은 누군가의 가슴을 찾아

징검다리 건너 건너 별자리를 옮겨가는 것




동정의 경제학


그는 오늘도 지하철 역에 나와

벤치 손잡이에 머리를 베고 돌아누웠다

굳은 머리카락, 계절 없이 입고 나온 옷 한벌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입을 닫는다

덮고 있던 신문지가 바람에 날리면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가 그와 함께 나뒹굴었다


그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솜털 날리는 자식들 하나 둘 크는 맛에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을 재촉했을텐데

허울좋은 GNP 몇만 불에 수출강국 대한민국

솟구치는 그래프에 어느새 우리는

먹고 살기 좋은 나라 동방의 경제대국

이제 어느 누구도 고개를 돌려

옆을 보지 못한다

꿈 많던 청년들은 노량진 고시촌으로

혹은 멋들어진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대학은 이제 아무 고민도 투쟁도 없이

대기업의 발 밑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골라 줄을 세운다


누군가 높으신 분이 하신 말씀에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의 필요한 자리에서

더욱 발전하는 그런 나라 만들어 보자 하시던데

설마 그가 필요한 그 자리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지하철 역 계단 아래

페인트 빛 바랜 늘어진 벤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