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여름에는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었다
밥그릇에
달빛이 떨어지면
밥과 같이 비벼서
달빛도 먹었다
여름에는 옥수수 찌고
감자 삶아서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먹었다
감자에 달빛이
스며들면
감자도
달빛도
같이 베어 먹었다
삽짝문 열고
들어온 실바람
모기 쫓는 화로 연기
흔들 때쯤
할매 무릎 베고
곤히 잠들어
기와지붕
흐르던 달빛
소리 없이 다가오면
나는 달빛을 입고
할매도 모르는
밤하늘을 밤 새 도록
헤엄쳐 다녔다
아내의 향기
아내와 있으면
아내만의
향기가 납니다
한결같은
그 향기
야금야금 베어 먹는
그 재미로 삽니다
아직도
수줍어하는 아내의
그 향기를
솔솔 풀어먹는 재미로
삽니다
새하얀 도화지에
분홍색
밑그림 잔뜩 그려놓고
푸르른 그 향기
이리저리
색칠하는 그 재미로
삽니다
목련꽃
지독한
봄 앓이를 하던
달빛 조는 봄밤
소쩍새
그렇게도 울더니
새 알 같던 몽우리
솜털 가시기도 전에
바람이
쪼아 놓고 간 그곳에
보시시 피어난
하얀 목련꽃
안개 낀 미명의
새벽을 떨치고
우윳빛 속살
다 드러낸 채
수줍은 웃음 하도 예뻐서
고이 쳐다보니
맨살 드러난
몸뚱아리
살 떨리는 소리
톡 톡
새봄이 오는 소리
행복
이른 한가위를 보낸
모처럼의 여유로
아내와 산에 올랐다
초가을 햇살조차
자취를 감추게 만드는
짙은 솔가지엔 향기도 가득하다
지난 장마에 속살을 드러낸
돌부리 계단삼아 오르는
산길이 정겨운데
키 작은 상수리나무
잎사귀에서 졸고 있던
가을나비 한 마리
날아오르고
쇠딱이 우는소리
산속 하늘을 후빈다
후두둑 모자를 벗고
떨어지는 꿀밤 하나 둘
어느새 한 줌을 모으고 보니
까마득한 어린 시절
뒷동산에 올라있다
작은 바지 주머니 두 개에
꿀밤 몇 알 채우면
그렇게도 뿌듯했던
그때의 마음을 아내는 알려나
산마루에서 바라보이는
쪽빛 하늘은
구름 몇 조각으로
작은 창문 만들고
가끔씩 불어오는 마파람에
마음조차 시원하다
그곳에 삼십년을 한결 같은
아내와 함께 있다
산다는 건
정든
바다를 떠나
굽이굽이
대관령으로 길을 잡고
낯선 땅
날선 칼날 아래
오장육부
다 던지고
오라를 받았다
겨울 덕장에 매달려
알몸으로
견디고 견디며
얼었다 녹았다
푸른 바다의
기억을 씻는다.
멀어버린 눈깔로
새 세상을 볼 때쯤
빳빳해진 등짝에
가슴이 노랗게
물들어 가던 어느 날
얼어붙은
목줄이 풀리고
양지바른 어물전
좌대 위에
다시 태어난
대관령 황태
열무 비빔밤
고단한 여름
허기 질 때
행여 이 물을까
흐르는 물에
아기 열무 고이 씻어
장물
한 숟갈
고춧가루
두어 숟갈에
참기름
몇 방울
풋고추 넣고 팔팔 끓인
된장 한 종지로
든든한
여름을 비벼주던
엄마의 손 맛
참 입맛 없을 때
지금은
아내가 해준다
엄마 솜씨 배워서
내 입맛을 다 알아서
김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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