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외 4편 응모

by 희희 posted Feb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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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빨간 해거름이 되고
하얗게 말라붙은 손가락이
더는 움직이지 않고 멈출 때 즈음
무의미한 손짓이 발버둥을 그쳤다. 
 
당신과 조금 가까운
허공에 머무르는 손짓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그 무엇도 흔들지 못하는. 
 
당신은 그저 막연한 우주.
나는 그저 하나의 공기.
당신은 높은 해.
나는 낮은 달. 
 
아무리 움직여도 닿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짝사랑.
보지도 못하는 짝사랑.
먼발치서 허공만 헤집는 딱한 사람.




가을가슴


가을이 너무 맵습니다.

눈가가 아리고 눈물방울이 맺혀 아픕니다. 
 
살랑이는 바람은 자꾸 맘을 어지럽힙니다.

빈 속은 자꾸 일렁이며 가슴을 툭툭 칩니다.
왜 아무도 없는 건지, 왈칵 울음이 쏟아지며 허공에 눈물을 뿌려버립니다.

갈구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해서 더 눈물이 쏟아집니다.


눈가가 아픕니다.  
가을이 너무 맵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첫사랑


사랑을 처음 앓는 사람이었다.
마치 열병처럼 뜨거운 이마로 대화를 나누었고,
차가운 가슴을 두들겨 패서 붉은 자국을 만들었고,
밤에는 흐르는 눈물로 키스를 나누었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을 새도 없이 떠나간 사랑에도 한없이 바보 같던 사람이었다.
식은 이마는 여전히 대답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고,
이제야 뜨거워진 가슴엔 더 이상 몽둥이가 닿지 않았다.
낮과 밤이 없는 눈물을 받아줄 상대도 없었다. 
 
사랑을 지독하게도 서툴게 대하던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을 앓던 사람이었다.
닳아 문드러진 사랑을 천국이라 부르던 사람이었다. 
 
그래, 내가 그랬다.
여전히 천국에 머물러 있었지만 네가 없었다.
빛이 없는 천국이었다.




그림자


아프냐 물었고
괜찮다 울었지 
 
달래는 마음에 가시가 돋아서
쓸어내릴 때마다 살갗이 쓸려 피가 났지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뺨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어 같이 울어버렸지 
 
잊지 못했냐 물었고
그렇다 대답했지 
 
오지 않을 대답 기다리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 울었지.




시든 화관


썩어 바람에 바스러지는 꽃잎의 화관이었다.

그리움과 눈물이 녹아 만들어진 꽃잎의 화관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마음은 화관을 쓰고 천천히 뭉개져 갔다.


그래도 좋으니.

그러는 게 좋으니.

그래야 좋으니.


몇 번의 질문에도 대답이 없었다.

시든 꽃잎이 모두 바람에 날리고서야 마음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럴 수밖에 없어.

나는 이래야만 해.

나는 이런 존재니까.


더는 화관이란 이름이 벅찼다.

그런 제 과분한 이름을 아는지 스스로 깨져버렸다.

마음은 더 이상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시든 꽃잎과 함께 마음은 같이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