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모 - 바람, 달린다 외 4편

by jeje posted Feb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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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그 이름 붙여주지 않기에

바람, 달린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녘

얼어붙은 창문을 흔들어 아침을 깨우고

사람 북적이는 출근길 거닐며 짓궂게 장난친다

 

햇볕이 늘어지는 점심시간

바람도 낮잠이 오는 듯

살랑살랑 걸을걸이를 늦춘다

 

해 저문 퇴근길

집 향하는 발걸음들 등 떠밀고 나면

그제야 산언저리 내려앉아 잠시 쉬었다 간다

 

달리지 않으면 그 이름 붙여주지 않기에

내일도 바람, 또다시 달린다




<빈껍데기다>

 

태어날 때부터 빈껍데기였다

 

모진 풍파에 휩쓸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거센 강물에 휩쓸려 천지를 떠도는 동안

나는 내가 하나의 값진 광석인 줄 알았더랬다

 

비로소 큰 바다에 다다랐을 때,

나의 단단함이 깨어졌을 때,

그때 비로소 빈껍데기임을 알았더랬다

 

수만 리 달려온 길을 거슬러 갈 수도

부딪혀 빛 잃은 껍데기를 자랑할 수도 없기에

넓은 바다를 떠돌며 가루가 되어야지

큰 대양의 양분이 되어야지




<날치>

 

칠흑 같은 어둠이 싫다

콧속을 메우는 이 비릿함도 싫다

바다가 싫은 물고기는 어디로 가야 하나

 

폴짝폴짝

해수면 너머로 고개 내보지만

찰나의 자유는 오히려 숨통을 조여온다




<별빛>

 

내 삶의 가장 빛나는 모든 시간은

그 빛이 모두 바랜 후에야 알게 되더라

 

작열하는 태양 아래선 제 모습을 감춘 별빛이

어둠 속에서 환한 빛 내듯

삶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나서야

, 그것이 찬란한 빛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더라

 


 

<밤바다의 온도>

 

어느 무더운 밤이었나

돈이 없던 우리가 향한 곳은 광안리였다

마땅히 할 것도 없이 그저 걷기만 했었다

 

무슨 얘기를 하든 어디로 향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맞닿은 손이 이야기를 이어가게 할 뿐이었다

 

평생 더울 것만 같았던 여름의 밤바다는 머지않아 가을이 되었고

바뀐 것이라곤 고작 바람의 온도와 빈손뿐이었다




작성자 : 이지은

이메일 : ollodvb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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