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 <머리 위에 고인 바다> 외 4편

by 류이비 posted Feb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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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고인 바다


숨쉬기 벅차다고 생각하던 날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달콤하다는데

나 혼자 비릿하다며 보글보글 눈물 흘리던

상처의 나날


혼자만의 웅덩이 속에서

밭은 숨을 뱉어봤자

몸에 차오르는게

피인지

산소인지

그냥 슬픔인지


모를 정도로 몽롱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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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야, 숨 죽이지 말아.

바람이 부는 초원이야. 슬퍼해도 좋아. 삼키지 말아.

참아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야.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우리, 찬찬히 생각해보자.


계단에 엎드려 맡았던 이끼 냄새,

숨을 뱉듯 고요히 했던 기도,

닿지 않길 바라며 썼던 편지,

모두 거기에 버리고 와.


느려도, 거칠어도 괜찮은 곳이야.



글쓰기 수업


물 먹은 종이가 보풀 일어

책상 위에 파도친다

닻을 내리려 날카로운 연필로

저 밑바닥을 긋는다

아무도 묻지 않은 오늘의 날씨 같은 것이

검게 번진 상처로 남는다

딱지가 앉기도 전에

급히 새로운 흉터를 그린다


수치와 모욕, 설욕과 불신

상반된 마음과 마음

언제까지나 같을 수 없다고 했으면서

당신, 나한테 왜 그랬어?


흑연 투성이 바다는

온 몸을 구깃구깃 접은 채

수평선 너머로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애정의 속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던 눈을

삐뚜름히 쳐다보기 시작하고

못 이기겠다는 듯 시선을 저 너머로 돌렸다가

용기내어 다시 눈 맞추고는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다

모르는 척 눈을 피하는데까지 걸리는 반나절.


결국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고

헤어지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시간과 같다는 이론.


누군가에게는 '휙' 이라고 느낀 바람,

누군가에게는 돌에서 싹이 자라나는걸 지켜보는 것과 같은 마음,

누군가에게는 숨이 멎은 것과 같다고 느낀 순간



같이의 굴레


창틀에 턱을 괴고

이상한 공상을 하며

저 멀리 우뚝 선 회색 첨탑을 바라본다


혼자 되어 외롭지는 않지만

공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쩌면 같이 있는 것이

진짜 제대로 된 고독일지도 모른다며,

함께 있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외떨어진 자신을 발견하기가 더더욱 쉬워진다며.


처음부터 같이를 몰랐다면 좋았을텐데.


타고난 인력과 척력으로

갑작스레 나타나서

서서히 사라질때까지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밀쳐내고

수많은 끌림과 수많은 부딪힘을

견디고 견디며

무뎌지고 무뎌지는 우리들


찾아가고 도망치기의 반복 끝에

나는 그저 지쳤을 뿐이다




성    명 : 장민영

이메일 : becky05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