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재

by 월봉 posted Feb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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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재


새하얀 캠버스
그 위에 태양을 그려보았다
빛의 비를 그리고, 색의 담요를 그리고, 온기의 수심을 그렸다
그러다 눈을 쑤시는 빛이 실증나서 지웠다
요란하기만한 색이 정신없어 지웠다
살을 긁어대는 열기가 증오스러워 지웠다
끝내 새하얀 캠버스를 더럽힌 태양을 끌어내렸다 

다시 새하얀 캠버스
이번에는 달을 그려보았다
은자의 고요를 그리고, 잠들지 않는 헌신을 그리고, 늘 새로운 산뜻함을 그렸다
그러다 음흉스러운 침묵이 답답해서 지웠다
잠을 자지 않는 기행이 수상해서 지웠다
계속 모습을 바꾸는 변덕이 지조없어 지웠다
끝내 새하얀 캠버스를 더럽힌 달을 끌어내렸다

다시 새하얀 캠버스
다시 태양을 그렸다
달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니까 그렸다
달보다 따뜻하니까 그렸다
달보다 색이 다양하니까 그렸다
하지만 다시 빛이 실증나고, 색이 정신없고, 열기가 증오스러워 지웠다

다시 새하얀 캠버스
다시 달을 그렸다
태양보다 편안하니까 그렸다
태양보다 고요하니까 그렸다
태양보다 보기 쉬우니까 그렸다
하지만 다시 침묵이 답답하고, 기행이 수상하고, 변덕이 지조없어 지웠다

다시 새하얀 캠버스
태양의 빛을 그리다 지우고 달의 고요를 그렸다
달의 침묵을 그리다 지우고 태양의 색을 그렸다
태양의 색을 그리다 지우고 달의 헌신을 그렸다
달의 헌신을 그리다 지우고 태양의 온기를 그렸다
태양의 열기를 그리다 지우고 달의 산뜻함을 그렸다

여전히 새하얀 캠버스
그릴 것을 찾지 못한 채 창밖만 쳐다봤다
낮의 태양, 그와 함께있는 구름, 새, 바람, 아지랑이, 나무, 사람들
밤의 달, 그와 함께있는 별, 별똥별, 등불, 고양이, 어둠, 취객들
...........대체 뭘 그려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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