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꿈이 깨운 새벽
그 해 새 눈
나는 바깥으로 나가볼 수 없었다
하얀 방의 벽을 타고
진눈깨비가 흘렀다
창문을 열면
하얀 하늘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누가 들어왔다
바깥세상이 잔뜩 묻은 얼굴에
웃음 같은 주름을 띠면서
나갈 수 없는 내 위로 헤프게 촉수를 세웠다
물이 가득 찬 다리로
버둥버둥 몸서리쳤다
곧 죽을 개처럼
찰나의 순간 깨닫는다
바로 나였다고
눈발을 세로로 걸어 들어온
세상의 흔적
나였다고
하얀 방
천장을 깨부술 듯하던
눈인지 진눈깨비인지가 멎었다
눈물 섞인 바람이 부는지
녹 슨 냄새가 났다
허기의 분기점
공중에 한번 튀어올랐다가
바닥에 닿기 전에 내려앉아서
예사롭지 않은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허기는 어디서 왔는지
허기를 느끼기 전에는 어디쯤 와있었는지
과연 정당한 허기인지를 생각한다
이틀 전 쯤 편지를 받았다
세상은 봄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허기를 느끼고
공중의 계단을 밟았던 것이다
세상은 봄
손가락 마디마디 죽음의 계절을 쥐고
오래된 밥 한 술 뜬다
그 쯤에서 흐느낀다
침묵처럼 계절이 피고 지는 소리가
어지러이 귓전을 때려서
침전한다
오후의 신음소리
피가 보라색으로 굳을 것 같은 날
창밖엔
무감한 바람이 불었네
시계소리는 모래알 같아
달갑지 않게 날 찔러도
나는 아직
초원에 홀로 남은 개처럼
갈 곳을 알고도 한참을 서있었지
머리위에서 올려다보는
칼날 같은 천장무늬의 시선
눈 맞추었을 땐
어둠 속 시곗바늘은
내 육신을 저당 잡아
박동을 멈춘 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