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미
짙은 어둠 눈꺼풀에 내려 앉으면
발가락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버리고
아무것도 뵈질 않아
발가락 끝 온 신경을 모아본다
애써 시야로 가져온
두 다리 놓치지 않으려
커다란 보폭으로 걸어보지만
이내 흐려져 버린다
다리는 힘들다고 근육을 죄는데
살점 촛농 되어 밑으로 향하고
모든 것을 끄집어 내 보지만
목덜미엔 알 수 없는 이물감만 남는다.
한입털기
첫 잔은 한입 털기
젊은 날의 객기로
때려 넣은 술 한 잔의 알싸함이
혀끝에 감돈다
캬, 하고 숨을 토해내듯
내 모든 과오를
쏟아내면 좋으련만 연거푸 들이켜는
손가락만 바쁘다
에라 모르겠다
한입 털기!
내 모든 슬픔을 한 입에 털어
집어 삼킨다
얼음물
컵이 운다
차가운 얼음 동동 띄운 컵이
울고 있다
바짝 붙여둔 책에 어느새
그 울음이 스며들고
이제는 책도 울고 있다
울어버린 책을 괜히
쓰다듬어 보고 당겨보지만
책은 여전히 울고 있다
구겨진 내 마음처럼
보란듯이 울어버린 책을 보며
나 또한 울고 있다
국수
일요일 오후,
청첩장을 받았다
그의 결혼.
괜시리 심사가 뒤틀려
오늘 점심은 국수를 먹기로 한다
밀가루 반죽을 옴팡지게 때렸다
그럴수록 손가락 사이사이를
밀가루는 질척하게 달라 붙는다
떼어내려고 용을 쓸수록
온 천지에 달라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와의 과거처럼 좀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보다
구슬피나무
한 차례 비가 왔다.
비바람에 사정없이 떨어진 열매
냉기 가득한 금남로에
알알이 박힌다
구슬피나무는 구슬피 운다
떨어지는 그들의 외침
오늘 우리의 가슴을 충동질 한다
그들은 비바람에 맞서지만 웬걸,
때 늦은 아지랑이만 피어 오른다
또 다시 비가 온다.
응모자: 이 서 진
이메일: hottjwls13@naver.com
연락처: 010-7636-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