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창작콘테스트 시 응모

by 서티브 posted Apr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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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m


서창완


가끔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별로 크지도 않은 작달막한 산이 가랑이를 벌리고는, 그 웅장한,

그래요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내 다리 밑으로 기어가 보렴, 돌아갈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어서와 덤벼


그러면 그 밑으로 차들은 바보처럼 미친 듯이 달립니다.

무서워서요, 겁이 나서요, 그 웅장함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혹시 그 가랑이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오지 못하기라도 할까봐, 아니면

거대한 똥 덩어리가 와서 지붕을 뚫어버리기라도

할까봐, 정말

미친놈처럼 달립니다, 미친놈처럼요.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본 차들은 알고 있는 거예요. 사실 그 가랑이 밑에는

항문도 없고, 끝없이 깊은 구멍도 없다는 것을, 다닥다닥

거대한 붕대를 감고, 그냥 병신처럼 거미줄이나 여럿 감고는

하루 종일 차에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을요,

오늘도 수많은 차가 그 웅장한 가랑이 사이를 마음껏

범하면서 들락날락, 우우우웅 소리를 냅니다.

        창문 닫아라, 아이 티비 꺼졌네, 라디오나 좀 틀어봐,

        뭐가 이렇게 길어


무섭기는요, 겁이 난다니요, 모두들 창문을 닫은 채, 걸레 같은 그

병신 산의 먼지를 피하고 있는 걸요 뭘, 그냥 그

더러운, 웅장하기보다는 걸레 같은 곳을 벗어나려고

오늘도 미친놈처럼 달리고 있는 것뿐이라구요.


5분만 더 잘게


서창완


더도 말고 5분만


더 잘게


하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5분만 더 자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 달라’

하고 있다


‘5분만

더 잘게’인 세상은

아름답고,


무릎이 꿇리고, 귓싸대기를 대주고,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바둥대는 나는


언제나 추잡스럽다


능력 없고 비위 맞

출 줄도 모르고 필요

할 때는 나오지도 않

는 자존감만 가

지고 불의에 저항하기는 커

녕 하루 일당에만 목

이 조일 줄 아는 나는


언제나 추잡스럽다


그래서 오늘도 5분 더 일찍 일어났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다


휘발


서창완


너는 삼겹살을 굽기도 하고

먼 거리에서 안전을 빌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목이 마른 잔을 채워주기도 하는 네가

내 목소리의 감정을 확인해주는

그런 때면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어진다

어린 네가 손사래를 치며

         에이 뭘요 라고 하거나

늙은 네가 허허 하고 웃으며

         더 열심히 하게 라고 하는 그 말을 나는

너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다

박수를 치며 한다 고개를 숙이며 한다 두 손을 잡으며

한다 하거나, 한다, 하거나 그것도 너를

다르게, 항상 무료로 이렇게 나는

오늘도 열 명의 너에게 말

한다


너밖에 없어


거리의 동창


서창완


우리는 마주쳤다

흘러가버린 옛 얼굴이

입가에 물수제비처럼 부딪친다

         전혀 바뀌지 않았구나

입 끝에 걸린 말이

쉽사리 빠져나오지 않는다

너를 별명으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는 덤덤한 척 무표정을 칠하지만

얼굴 곳곳에는 제대로 덮어내지 못한

표정이 얼룩져 있다, 우리는 너를

기억한다, 확실히 우리 조각에는 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아주

그것들을 곱게 발라버리기엔

우리는 너를 별명으로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너, 하지만

         전혀 바뀌지 않았구나


시국선언

    

서창완


가방 끈

같은 길이로 쪼매

어깨에 올려

걷는다

책 세 권이 출렁

묵직한 뒤틀림이

유난히

좋아하는 오른 어깨


끈 풀어

어깨를 접고

키 순서로 책을 세운다

양쪽 같은 길이로 쪼매

다시 올려 걷는다

오른 어깨엔

파고드는 뒤틀림

어깨를 접어

열 번


오른 어깨만

좋아하는 끈을

풀어 어깨에 다시

얹어 걷는다


그리고 한 번 더 오른 어깨가 아프다


애초에 뒤틀린 건 끈


말고

오른 어깨였으니


성명 : 서창완

연락처 : 010-7723-6906

e-mail : pegabo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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