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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인이지수 posted Mar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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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동그라미는 어떤 선의
웅크림입니까
왜 사람들은 모두 둥글게
모여 앉습니까

모닥불이 타오르는 것은
분명 장작의 장례일 거야
까맣게 타들어가는 울음이
불을 내서 뜨겁게 만들지

그 장례를 추모하려
손을 뻗으면 금세 데이고 말 걸
그래 장작은 이미
죽었으니까

웅크린 선은 아니 동그라미는
아니 울음은 아니 모닥불은
언제 슬픔을 그칠지 모르고

차가운 눈물들이 잔뜩 쏟아지고
나서야 연기를 폴폴 내뿜으며
열기를 점차 끈다

모든 장례가 끝났다
둥글게 웅크린 선이 다시
일직선으로 펴져 자리를 뜨면
까맣게 타들어간 시신

아 이제 차가운 땅속으로 스며 들어야지
나의 장례는 모두 끝났으므로






유리잔/

유리잔 안에 시간을
부어놓고 벌이자
성대한 잔치를

이 잔치는 누굴 위한 겁니까?
누구도 답하지 못하고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린다

이십 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던 중학생의 장례를
치르자 이곳에서

파티 음악을 틀어놓아도
표정엔 표정이 없고
곧잘 숨이 막히기도 하였다

슬픔의 이마를 짚어보자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니던
슬픔들을 유리잔 안에
부어놓자

샴페인을 마시자
아니 슬픔을 마시자
짜디짠 바닷물 같은 것

유리잔을 내려놓는다
잘 가 다음에 또 놀자







시를 쓰는 일/

마음 가는 대로 다만 몇 줄의 글을 적자
굶은 속에서 문장을 끄집어내는 것
그런 일을 사랑하게 되는 것

물음표가 달린 문장은 시가 될 수 없을까?
온점의 문장은 너무 매정해.

그래답답하면답답한대로시를써보는거야
필름 카메라, 나무 머그컵, 낡은 일기장, 아버지, 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줄줄 이어 써보자, 반점에, 반점을 달아서,

시집을 우산 삼아 비를 피하자
스스로를 시인이라 이름 짓는 것
내가 적고 싶은 글을 적는 것

내가 남긴 온점들을 이어 그림을 그리는 일


















병/

늙은 의사가 있는
주름진 청진기가 있는 병원에
가고 싶다 문득

손바닥 위로 다섯 알
목구멍 깊은 곳으로 새카만
그리고 뜨거운 속으로

거울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비추어지고
내가 와장창 깨져버리면
거울도 깨져버릴까

깨진 거울 조각을 밟는 발이여
아니 눈이여 아니 슬픔이여

슬픔이 눈물을 자꾸만 자꾸만
흘리면 어떡하나
익숙해진 어색한 병명을
달고서 자꾸만 자꾸만

늙은 의사의
주름진 청진기가
푸른 피 같은 흉터를 들을 때

묻고 싶다
죽을 때까지 흉터는
아픈 쪽입니까 안 아픈 쪽입니까
언제까지나 그렇게

거울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비추어지고
내가 와장창 깨져버리면
거울 조각 위를 걷는


통조림/

싱크대 위 정사각형 찬장 안엔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통조림이 있다
한참을 잊었어도 시간이 멈춘 듯 유통기한은 아직 남아
꾸르륵, 제 할 일을 하고파 난리가 난 위장에
둥글고 딱딱한 참치 통조림을 욱여넣는다

인위적인 기름 냄새,
축축하고 부드러운 참치의 살코기가
입안을 힘없이 헤엄치다가 깊은 곳으로 넘어간다
거대한 참치가 손바닥만 한 통조림에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철자가 틀린 거창한 단어처럼 힘이 없는 거대한 울음을
곱씹는다
거대한 것들도 잘게 부서져 결국에는 깊은 곳으로 넘어가고 마니까

지구만 한 마음으로 줄곧 앞에 서면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 안에 가둬버렸지 당신은
난 통조림 안에 구겨진 참치 같았어
거대한 마음이 손바닥만 한 통조림에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통조림의 유효기간이 다 닳은 날엔
쓰레기통 말고 하수구에 흘려보내야지
하수관을 헤엄치는 힘없는 참치
그리고 나 그리고 당신











시든 꽃에 물을 주는 일/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부르튼 입술을 마주한다

우리는 자주 부르튼 입술로
서로의 공백에 입을 맞췄지
그 공백에 자주 취하기도 했었어

그런데 숙취가 아직 덜 깼나봐
새벽과 온몸이 맞닿는 날에는
아직도 나는 몸살을 앓아

한파였던 너에게 나에게
오늘의 외투를 벗어주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눈빛으로
아프지말라고 내게 안부를 전해주렴
약으로 삼키고 나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미련이란 시든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런 마음으로 꽃에 물을 주는 것




시간을 곱씹는 일/

희망을 뱉는다
놓치면 모래가 되어 무덤이 될 테니

가만히 앉아 시간을 곱씹는다
오로지 그것이 나의 일

언제부터 멈춰있는 시계는 한 시간만을 가리키고
종일 기다려도 늘 시계는 맞지 않고

도망간 애인은 어젯밤 꿈에서
깨어진 유리 거울처럼 운다

꿈속에서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러나 붙잡지 아니하고

아픈 내가 도망간 너를 사랑해서
꿈은 끝이 없고

















당신의 얼굴이 밝은 만큼 그림자는 더 어둡지/

눈도 못 뜨고 고무젖꼭지를
힘껏 빠느라 정신이 없는 젖내기처럼
나는 눈길을 밥처럼 먹으며
당신의 그림자에 기생했지
굶주리면서 배고픈 줄 모르고
맛도 없는 것을 힘겹게 빨아
울음으로 목을 축여
아무리 빨아도 단 것은 나오질 않는데
그림자는 너무도 추워
당신의 얼굴이 밝은 만큼
그림자는 더 어둡지
막 돋아난 새싹마저도 얼려버릴 거야
내가 달랐더라면 네가 달랐더라면
지금과는 달랐을 거란 믿음으로
상상해낸 만약에 마약처럼 취해
그렇게 기생하는 애처로움
뿌옇게 분을 바른 듯
온몸 깊숙이까지 당신 냄새가 스며들어
숨을 들이켜지 않아도 계속해서 취하고 취해
다시 만약을 찾고
나는 냄새밖에 없는 사람이라서
아무것도 비추어지지 않는 거울 앞에 주정을 부려
그래 어쩌면 너 이미 굶어 죽었구나
좌절감은 귀가 먼 채 계속해서 취해가지









원고지/

텅 빈 원고지를 펜이
지나쳐 갈 때마다
툭 튀어나와
붉어진 뺨 같은 붉은 웃음이

그대를 시로 쓰면
나의 작품이 될까

쿵쾅대는 심장의 울림을
아프도록 좋아하는 마음을
쓰는 법을 나는 모르지

매일 진화하는
이 21세기의 무엇도
그대를 담을 순 없어
값비싼 그 어떤 카메라마저도

새벽마다 몰래
따다 둔 별들을 달의 조각들을
원고지에 쏟아부어도
그대 이름 석 자를
이기지 못해


하는 수없이 나
오늘도 이름 석 자 
적어 놓고 잠을 자네

빽빽한 칸들에 갇혀
그대 이름을 부르는
꿈을 꾸며



















사과와 배냇저고리/

사과를 베어 문다
입안에서 몇 번 씹히던
과즙이 그대로 떨어져
배냇저고리에 묻는다
비릿하고 눅눅한 맛

색이 누렇게 바랜 과거는
과정이라고 했다
팔에 칼을 대던 수많은 밤
무엇인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마도

베어 문 사과에는
곧 벌레들이 들끓는다
야금야금 버려진 사과가
갉아먹힌다

벌레가 달라붙어 못나게 파인
갈변 된 사과가 결과라면
바래버린 배냇저고리와
오른 손목 가득한 흉은
과정이겠지

그 어느 과거와 현재를 자를 대고
죽 이으면
그게 내 문장이 되는 거야
그래 그렇겠지

사과는 이미 시들어버렸는데
자꾸만 과거를 짜내어
물을 준다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만두/

부드러운 반죽을
주물 거리는 거친 손

뜨거운 증기 속으로
만두를 하나씩 놓는
그 손을 나는 보았지

뜨겁고 뿌연 증기 속에서
만두를 꺼내듯이
그 어딘가에서 끌어올려 주던 손

삶이란 때론
식어버린 만두처럼
차고 짠 눈물을 삼켜야 하는 것이라고
내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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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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