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작 [높이 없는 허공에 닿고자]외 4편

by 서쪽하늘 posted Jun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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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없는 허공에 닿고자


날고 싶어

허공에 뛰어 올라

두 팔을 퍼덕인다

가뿐한 착지

체공시간이 짧았다 말한다.


조금 더 날고 싶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두 팔을 퍼덕인다


발바닥이 아프고

무릎이 시큰거린 만큼

저 위에 더 오래 있었다

체공시간이 길었다 말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오래 날고 싶어지면

진화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두 팔로 날개를 삼을 것인지

두 팔이 날개로 진화되길 기다릴 것인지


진화에 대한 가상체험을 위해

꿈을 꾸어보기로 한다


날게 되는 꿈

진화하여 오랜 체공시간을 만끽하는 꿈

꿈속에선 아무래도

짜릿함이 없다


어깨죽지의 유전자가 허공을 기억해 낸다

묵직한 고통이 옹골차게 마무리하는 비행

트라이아스기 공룡이 익룡이 되려

한 번 날고자 했을 때의

그 절벽

허공을 만지는 최초의 도약


독수리가 한나절을 떠 있어본들

그 짜릿함을 알랴


날고 싶어져서

높이 없는 허공에 닿고 싶어져서




망부석


기다리다 마음이 무너지면

돌이 됩니다.


산중턱 등성이부터 그대를 기다립니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싶어 몇 걸음 올라갑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길을 따라

그대를 찾아봅니다


두어 걸음 더 올라갑니다.

숨어있던 길이 조금 더 드러나면

저는 조금 더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제법 남은 산마루를 바라보며

기꺼이 몇 걸음 더 올라갑니다.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까 봐

하늘도 한번 보고 바람도 안아봅니다.


산마루에 올라가진 않으렵니다.

앞산 가려 너무 멀리 뵈지 않는 여기까지가

제 기다림의 높이입니다.


이제 해가 집니다.

해 숨은 구름이 아름다워 그만

그리움이 커졌습니다.


노을이 남아 있는 동안

산 아래 마을로 달려갑니다.

다른 길로 오시어서

되레 저를 기다리실

그대를 반기러

달려갑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돌이 됩니다





사랑니 뽑던 날


사랑니 뽑던 날

마취약 기운이 유난히도 오래갔다

입안의 볼살을 물어도 아무 감각이 없던 하루

남은 하루 내내 볼살이 어금니에 걸리적거렸다

함께 느끼지 않는 볼살과 어금니

두 어금니 사이로 한 움큼 물려오는 볼살

내 살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 세게 물지는 않았다

그러다 일상에 정신이 팔려 잊고 말았다

어금니는 마치 본능인양 씹어댔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의 후회 저편에는

온통 마취 기운의 행적들이 있다

나를 그토록 충동하던 느낌들 혹은 마비증상

자기 살 씹는 쾌감에 질러대던 독설, 비아냥, 조롱


마취가 풀리고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오는 저녁

헐어버린 입안을 혀로 어루만지며

아프지만 반가운 내 살의 느낌을 만끽한다


문득, 후회가 반가워진다

지난날의 후회가 아프긴 하지만

후회는 마취가 풀린 내 삶의 간절한 징표이다





겨울매미


서럽게 우는 매미를 보았다

크리스마스로 치장한 나목의 거죽을 핥으며

부빌 수 없는 온도의 날개를 중력에 맡겨 떨구는

겨울강보다 차가운 매미를 보았다


백화점 9층 옥상

뿌리가 공중에 떠 있는 나목의 가지위로

지난 여름 벗어놓은 허물이 눈을 감지 않는다

노려보며, 동자 없이 구멍으로 응시하며

여섯 다리 모두 옴짝

그저 껍데기이기를 거부하며 찰싹 붙어 겨울에 옥죄인다


나무가 쉭쉭 몸부림을 하며 접신을 한다

허물이 차오른다

하강한다

겨울매미는 수직으로 하강한다


백화점 1층 진열대에 다다른 매미는

중력이 닿지 않는 유리상자 속에서 낯선 계절을 울어댄다

허물은 안전하고

매미는 갇혀있다


날아오를 길은 모색 중이다





하루의 언어


아침에는 갓 깨어난 언어들이

목적지 없이 날뜁니다

접시뻥튀기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뻥튀기를 보며

내뱉은 말을 주워 담습니다

혀는 납작해지고, 말은 부풀어요

잉어들은 서로의 등을 타며 내뱉지도 않은 언어를 삼킵니다

음성통화가 끝났네요


오후 2시에는 대부분의 언어가 질식합니다

살아남은 말들은 몇 글자로 잽싸게 빠져나가구요

아차!

반짝이는 좌변기가 핸드폰을 삼켰어요

문자메시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익사합니다

베란다 창틀에서는 개미들이 일렬로 말해요

초개체는 그렇게 마음 없이 생존하더군요


해가 지면 집안은 구석구석

머금은 말들로 흥건하죠

내 귀는 시멘트벽에 들어붙어

콘크리트에 배인 하루의 언어를

쪽쪽 빨아요

가만히 누워 음미하면

잠이 달콤해집니다


마음은 마땅히 삼켜지고, 익사해야죠





조상현

010- 9903- 3280

realcho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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