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차 월간문학 응모작 역류 외 4편

by 박규진 posted Mar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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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류


병실은 갑작스레 무덤에 가까워진

사람들의 삶을 되돌려 주어야 했으나

암환자들끼리는 자신들이 나이롱환자라며

가벼운 안정을 바라다 실패하고

스물이 채 안된 병인의 가족들은 울면서

계를 타 써야지 않을까

귓속말을 했던 밤

밤늦게 온 노동자가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지

모두들 냄새로 짐작할 수 있다

햇살이 역류하듯 울렁거리는 주말

내일 봐 병원을 나가면 허해진 심정을 이용하려는

신도가 친절하게 다가와 포교일을 한다

하느님은 늘 당신 곁에

함께 있을 거예요

버스에 오르면 환자 가족들을 따라

무임승차한 신이 버스기사를

헷갈리게도 했다








     주택



배앓이를 내도록 했었던 꼬맹이 시절이 왠지 냉대하는 것 같은 옛 전셋집

비천한 욕을 받은 옷도 그대로 걸치고 둘러봤던 엊그제에도

집의 외곽은 대체로 남아있는데 다른 셋집으로 나누어 살던 아랫집은

개조를 하여 무슨 돼지고기 식당으로 변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우리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서 고기를 먹었다



뒷쪽 역겨운 수풀 가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을

그쯤 집을 나갔으니 아 이때 아파트단지도 났었구나 십년은 되었나..

오일장 거리에서 병아리를 사서 키우다 죽은 일도 십여년 전 일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에도 주위에 흙은 없고 우리 땅도 없어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던 우리가족은

새하얗게 질려 감긴 눈- 그 아이를 뒤쪽 수풀에다 남몰래 내던졌었다

전에 유기했던 병아리의 영혼이 길을 거닐다 흠칫 놀라던 사람 곁에

삐약 뺙- 돌아다니는 사실을 아파트 주민들은 모르리라








    반쪽  전셋집


도로변에 놓인 한 음식점에서

살구 빛 조명이 어울리는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같은 집을 나눠 살았었던 내 또래 친구네

어머니를 우연찮게도 마주했던 것이다

내 몰골이 어린 시절과 달라 고갤 들지 못했으나

친구네 어머니는 손을 내미신다

엄마 있었을 적에는 김치도 갖다 주고

나눠먹었었던 조금은 몸이 버텨줬던 시절

지금은 신장이 안 좋아 일주일에 세 번씩은

투석을 하면서도 슬플 때면

술 한 잔씩은 한다는 말에

우리는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것뿐만 아니라

때묻은 몸뚱이도 같이

나눠 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한다








     나들이객


뒤축에 짓이긴 유채향 짙은 나들이객 지나

만인 일꾼의 휴일이로구나

달력과는 달리 얼마 없는 휴일에 취해

제 발길에 꿀벌이 밟히는지도 모르네

바르르- 나래를 떨며 밟힌 일벌

유채밭 가에서 흙장난을 하는 듯한 소음

일어나는 유채 같이 고된 나들이객 나들이객

고되어 나래짓으로 흙장난 하며 지나는

엎어진 유채밭 길목에 연보라 나방도 밟힌다








     부산시  동래구


동래에 사는 이들은 물세 낼 돈도 없다

열 살배기 꼬마가 근처 뒷산 약수터로

시장바구니를 끌고 큰 물통 넣어 지나간다

분명 저 아이가 학교에서 철지난 역사에 대해 배울 적엔

전쟁 통에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어

판자촌이 생겼고 그래서 이렇게 달동네가

여전히 남아있는 거라고 배웠을 것이다

아이가 시장바구니에 물을 한가득 채우고서

산길 내려오면서 만난 동래 사람들은

좁은 골목에서 노인이 넘어져도 불이 나도

소방차 못 들어 와도 페가가 위험하다해도

전쟁 통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판자촌이 생겨

산 아래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라고..

동래에 사는 사람들은 현실을 보면서

마치 유물을 설명하듯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은 전시되어 고쳐지는 일이 없다







이름 박규진

010-2309-7956

이메일 qortj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