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자 외 시 4편

by 이도의꽃 posted Jul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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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자

 

 

붉은 해와 살결 같은 달이

교차하는 지점에 시내버스가 있다

십 분 거리로 가는 노선

기쁨에서 우울로 가는

우울에서 기쁨으로 가는

버스가 잠시 선다

냉큼 올라타던지

그냥 보내던지

개인의 자유겠지만

정류장에는

멈춤만 남아 있을 뿐이다

머무름이 때론

정체성의 소멸을 부를지도

버스를 타자

향하는 모든 향함을 찾아

레드 타임

 

 

칠월의 장미가 익어가는 정원에

비밀 우물이 있다

두레박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찾지 않아

불안이 요동칠 때마다

증발되어 날아가는 좋은 기억들

물이 고여 찰랑거릴 틈도 없이

감성만 배어 드러나는 민 바닥

아직 오월의 빨간 장미와 가시로

제 몸을 찌르고

하얀 리본을 치유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곧, 빨간 물이 후회처럼 번질 걸 알면서

뜨겁기만 한

슬프기만 한

철없기만 한

비밀 우물의 시간은 빨간색이다

 그 숲에는

 

 

오래된 잣나무 숲에

사람 냄새가 나는 나무 벤치가 있어요

여우 같은 고양이가 냄새를 쫓다가

푸른 눈빛을 흘리고 도망가네요

빨간 우체통이 사라진 거리에서 울던 여자가

그 숲으로 갔어요

여자가 불러낸 순수와 아름다움이

급히 달려왔는지 숨이 차 보여요

손수건 대신 한 움큼의 감성을 펴고

우리는 나무 벤치에 앉았어요

모기향을 피운 후에

멀어져가는 유월의 모기들처럼

소중한 순간도 멀어져 가네요

곧 추억이 돼버린 초여름 저녁

네가 좋아 나를 이해해

너를 이해해 내가 좋아

느낌표와 물음표 같은

문장 부호만이

잣나무 숲에 오래오래 머물렀어요

청춘의 잔상

 

 

장미여관 이 층 복도 오른쪽 맨 끝 방

나무 틀이 비틀어진 작은 유리창에

보랏빛 네온을 번쩍이며

언제나 정직한척하는 십자가가 보이고

 

스무 살 남짓 먹은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벽에 기대어 앉아

방바닥이 기억하는 바퀴벌레가 지나간 길을

집게손가락으로 따라 긋고 있다

 

철없이 낭만을 찾아온 기차여행은

60촉 백열등이 커다란 그림자를 흔드는 좁은 방에 머물러

조금씩 서로의 어깨가 스칠 때마다

벽에서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소리는 심장을 향한다

 

담배 빵 군데군데 기이한 무늬를 만든

노란색 플라스틱 재떨이 안에 넣어둔 안마시술소 성냥곽

성냥 한 개비에 꽃봉오리 같은

불꽃으로 켜진 첫 순정

저 멀리 청량리행일지도 모르는 기찻소리는

철로의 순결을 벗겨내고

눈 감아 버린 정적을 삼키면서 달려간다

 

아, 숨 막히는 설렘

뜨거운 심장이 외로움으로 식어버리기 전에

가난한 사랑이 숨 쉬는 장미여관으로 가야한다

아름다운 청춘이여!

차가운 글자

 

 

자퇴생을 닮은 책상 모퉁이에

낙서 한 줄

빈 책상 서랍은 쉽게 열리고

언제 넣어 놨는지 모르는

납작하고 네모난 비닐 속 물티슈

목마름 끝에 마신 물맛 색깔을 낸다

낙서를 지워본다

연필 깎는 칼로 새겨진

날이 선 글자에

맥없이 찢긴 물티슈

글자는 오래된 일기장에서

방금 나온 표정으로

숨막힌다답답하다재미없다

말을 건넨다

 

물티슈로 지울 수 없는

십구 세의 언어는 차갑다j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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