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차 창착콘테스트 시부문 공모 (감자 외 4편)

by 문형민 posted Aug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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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어디서 와신지도 모르것는

뿌리 어신 저런 것들과

유리 벽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신경전을 하자니

하영 미칠 노릇이여라

 

감자란 이름 버려지고

고구마라 불리우는

지금의 냉랭하고 건조한

현실 안에서

촘말로 어이가 없수다게

 

적당히 축축하고 똣똣했던

제주 토지 태생

 

나에게는 아방, 어멍 많았수다

때 맞춰 머리칼 잘라주며

지꺼진 웃음 날려주고

다 자란 나에게

요먕진 두린아이라며

칭찬 아끼지 않던 내 부모님들

어디 감수광

 

독립한다고, 육지로 가겠다고 하던 나를

세월 서린 손으로 먼지 툭툭 털어내주고

육지 사람 혼티 씹시렁하게 굴지 말고

촐람생이처럼 다니지 말어라이

말하던 부모님들

어디 있샤

 

모공에 흙냄시 진득히 풍기는

눈물만 맺혀신게

이거 어떵해야 햄신가

 

처량한 육지 살이

오늘도 고구마로

감자는, 나는 어디에 이신가

 

 

 

성인입니다.

 

추적추적 비 쏟아지던 등교길

흐릿한 녹색 2016번 버스 안

습한 공기의 정적을 깨는

- 성인입니다.”

 

 

다 크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

맨 뒷자리 구석으로

여느 때와 같이 앉는다.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같은 정류장에

비슷한 사람들을 태우고

기어가는 버스는

오늘도 속도를 즐기지 못한다.

 

 

이번 정류장다음 정류장

지겨운 연쇄 속에서

먼 곳의 정류장을 보지 못하는 나는

내일도 시간을 달가워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1,200원을 지불하고

성인이라는 병명을 알아낸

28개의 좌석 중

하나의 병상에 누운 환자.

2016호 병실의 통원 환자일 뿐

 

    

낯선 포옹. 그 여행길 

 

갈 곳 잃은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테다.

낯선 포옹,

그 조그마한 따스함을 위해 걷는

여행길은 멀다.

 

 

꿈의 속도를 결국 따라 잡지 못한

나의 등 뒤,

작고 비루한 날개

 

 

 

잠시 날개를 접고

바람의 향유에 맞추어

천천히 떠돌테다.

 

    

겨울 내 뭉쳐져 숨어있던 위로들이 녹아

허공에 흩어져 둥둥 떠서

햇살집으로 들어가는 3

 

 

그 집을 향해 걸어가는

희미한 여행길은 멀다.

  

  

주정(宙情)

 

 

깜깜한 먹구름 잔뜩 업고 온 오늘

등에 붙은 서러움 털어내려

술을 부었다.

잘 안씻겨 내리기에

한 병을 다.

 

    

그때서야 먹구름은 비틀거리며

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몇 년만에 오는 폭우였다.

 

 

 

우산보다 어머니의 품이

택시보다 아버지의 목마가

필요했다.

 

 

금 비 마꼬 이써

목까지 비가 차올라

자음과 모음 모두

흠뻑 젖어 꼬였고

초라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들 술 마셨어? 취했구나.

주정 부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

 

    

주정이 아니라

주정(宙情)인거야

주정이 아니라고!”

 

    

굵은 주정이 내리 쏟아지는 폭우

재해라 일컫지 말아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 현상인 것이다.

 

 

분홍빛 소녀

 

 

겨울 내, 앙 다문 입술에

살며시 다가온 봄바람 한 입 머금고

작은 떨림으로 반응하는 너

 

오늘도 너는, 흐드러지게 피면서

연분홍빛 발그레한 꿈을 키운다.

 

바람이 불 때에도, 불지 않을 때에도

조심스레 피어나면서 너는,

설렘 묻은 작은 입을 사알짝 연다.

 

하이얀 마음 속

부끄러운 사랑이여

부드러운 진심이여.

어리지만은 않은

저 혼자 몸을 배배 꼬는

분홍빛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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