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공모 입니다.(6편)

by 좌충우돌 posted Aug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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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의 시간

 

사랑은 눈부시다


선사(先史)의 도공이 빚어낸 마술의 선에 수놓은 빗살무늬토기(瓷器)처럼
지워지지 않고 가는 사랑은 눈부시다

한강 그 주안상 같은 잔디에 앉아 가까운 강안 선사의 움집을 본다


그 움집터에서 메아리 소리 내며 천지사방으로 닻을 내리는 사랑

저기 저 태고의 바람 속으로 하늘의 몸을 빌려 소원 비는 제사장의 딸이
선사의 숭고한 제단(祭壇)에 경배하고 조선(朝鮮)의 몸을 푼다

 

제사장의 아낙은 억겁 흐르는 아리수 걸러내어 무균질의 청동을 생명에게 바르고

만 년 역사의 물길을 조리하여 한반도의 품 안에 담는다

 

 

어떤 귀가

낮이 허둥대자 어둠이 혀를 내민다
그림자는 제 키를 훌쩍 키우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총총 거린다

선전포고는 전송되었고 도시에는 다시 총성이 울린다

도시의 출근은 전면전이고 퇴근은 빨치산 게릴라전이다

사람들은 아침에 집에 심어 놓은 그리움을 찾으러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달려가지만,
집에는 정적의 화분만 웃자라고 그리움은 시들어 버렸다

스마트폰에서 가족이라는 문자를 전파로 발송 한다
전송된 문자는 지구를 도는데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응답이 없다

키패드를 열어 개정 초기 입력 예약한 번호를 누른다
철커덕 다소곳한 대문만이 사랑스럽고 공손하게 반길 뿐, 사랑은 바람을 따라 나섰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이방인이 된다

쓸쓸한 도시의 다세대 주택에 어둠의 부서진 잔해만이 어느 힙합 가수의 춤을 따라 추고 있다

불을 켠다. 익숙한 사물들의 형체가 부시시 일어나 눈을 비비고 나를 본다
낯설다. 하바나의 밤거리 카페처럼 낯 선 풍경이 집 안을 배회 한다

청춘처럼 누워 있던 집 안의 사물들이 냉소의 눈빛으로 중년의 처진 어깨를 본다
미안하다 텅 빈 지갑과 주머니 속의 동전 몇 푼으로 저들을 달래기는 초장에 글렀다

이미 이방인이 되어 있는 나를, 도시가 게워 내고, 가족이 반송하고, 다세대 주택의 어둠마저 밀어낸다

 

 

고사목

 

비어 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으니 맛이 있다
채워져 있는 것은 비울 수 있으니 즐거움이 있다

산에 사는 고사목은 비움도 채움도 다 가지고 있다
산에 사는 고사목은 비워져 있지도 채워져 있지도 않다

제 자리에 서서 말없이 햇살과 바람, 비와 눈을 본다
뿌리의 영양 없이도 굳건히 서서 웃고 있을 뿐이다
햇빛이 선사하는 엽록소가 없어도 푸른 미소를 지을 줄 아는 것뿐이다

우리 모두는 한 그루의 고사목이다

채워지면 바로 비울 줄 알고 비워져 있으면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채워 넣을 줄 아는
씩씩하고 용감한 한 그루의 영원한 고사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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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분다

연 날리자

 

세상에 하늘은 참으로 넓으니까

바람이 민박처럼 정겨운 날이면

넓은 하늘 도화지 삼아

얘들아 우리 모두 연 날리러 가자

 

하늘을 나는 저 연들을 보아라

 

가오리 가족연 반달 치마 동이 박이연

오래 오래 잘 살아라 청사초롱연

하늘 맘껏 헤엄쳐라 물고기연

전쟁이다 화살 막아라 방패연

다이나믹 곡예 공중제비 즐거운 스포츠연

 

예술이다 하늘에 뿌리내린 삶의 흔적이다

 

얼레와 실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바람의 장력을 온몸으로 버텨보자

승천하는 용의 기상처럼

스스로 날아올라 하늘이 되는 나를 보아라

 

낚시터 손맛에 살아 있는 횟감 같은

바람에 춤추는 연실의 탄성은 전율이야

내 어린 날과 젊음이 저 연에 다 들어 있으니

어서 빨리 연을 띄워 생의 갈증을 날려 버리자

 

! 바람 분다

연 날리자

 

 

우리

 

바위 위에도 꽃은 핀다

 

유월처럼 참혹한 햇살 받으며

유려하고 넉넉하게 꽃을 피운다

 

나는 바위고

너는 꽃이다

 

서로 그렇게 사는 거다

 

 

할미꽃

 

맑고 여린 꽃대 우에

초롱 햇살 한 조각

 

눈보라 이겨내고

양지 언덕 그리워

 

친동 외동 자손들

곪은 배 채우라

 

스스로 꼬부라진

 

굽은 등 흰털 양지

무기질 식물

 

백두옹(白豆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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