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매복 사랑니 외 4편)

by 적문 posted Aug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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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 사랑니

 

단단하고 축축한 뼈만 여기 남겨두고,

사랑 두 개, 어디 가고 없을 줄 알았던 게 여지껏

내 입에 고이 잠들어 있다

 

사실

십칠년간 부지런히 자라고 있었던 사랑이기에

지금은 조금

잠이 들어도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도

뼈는 항상 말랑함을 동경하는 까닭에

끼잉거리며 제 몸을 망치질하기 바쁘다

 

그래서

욱신거리는 단단함을 견디기 위해

사랑은 아직도 자꾸만자꾸만 잠을 청하려 한다



메모지에 쓰인 시

 

자정이 찾아들면 나는 한 줌 시를 뿌릴 테요.

그대도 잠든 이 어둠 나만 잠 못 들고

너른 생각 십구만평 누구 하나 말동무 되어주는 이도 없이

차암 외롭게 거닐다가 뿌릴 테요.

 

시란 참 눈물과도 같지요. 언젠가는 그대도 알 테요.

 

누가 눈먼 고요에서 말이라도 걸어올 적이면

나는 그대 깨어난 줄 알고 손 잡고 걷겠소.

여명의 빛 그 환한 미소 머금으며 나는 시를 거둘 테요. 눈물도 거둘 테요.

 

눈물 자국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지요.




초를 보며

 

태어난 저 촛불은 무엇이 그다지도 고되기에 눈물을 흘리는가.

 

저 아련한 아지랑이 자그마하게 피어오르고

심지 끝 졸고있는 검정머리 아이처럼 고개 기울일 때

눈먼 어둠을 켜는 소소한 밝음이 있지 않느냐

 

색종이 곱게 찢은 불꽃에

나는 머리카락 한 올 뽑아 태워보자

 

그러면

내 몸 한 조각이 흘린 눈물이

그의 눈가에 대신 고인다


                                예수의 고백

 

나는 언제나 슬플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래서 당신은 내게 마음껏 혐오의 돌을 던지든지 쇠로 된 증오의 공을 쏘든지 하세요. 나는 언제나 슬플 준비가 되어있기에 연민의 십자가를 질 준비 또한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쓰레기 더미에 버리든지 구정물에 머리를 박히게 하든지 하세요. 나는 언제나 슬퍼하며 조금도 울지 않겠습니다. 가슴 찢어져도.


아니, 가슴은 다시 꿰매면 그만입니다.

찢어진 건 다시 꿰매면 그만이고, 구멍 뚫린 건 다시 메우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나는 슬퍼하며 조금도 울지 않을게요. 언제나 슬플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그러니까 어쩌다보니, 난 이미 그렇게 되어있더군요.

정 내가 염려스럽다면 당신은 내 죽음 뒤에 숨으세요. 시퍼런 쇳덩이가 나를 꿰뚫을 때도 나는 밝은 꽃 그대에게 가야지!

하며 비명을 질렀답니다.


 

잘 가거라 찌꺼기여 회색이여 잔상이여 먼지여 허물이여

이제 증오와 노여움은 너에게 맡기고 나는 훌훌 떠나련다.

 

허나 조각조각 부숴진 너도 한때 나의 육신이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마.

조각은 쉬이 사라지지만, 너는 나였기에 너를 위한 눈물은 사치가 아닐 테다.

 

잘 가거라 나날이여 부끄러움이여 죄여 아아 과거의 슬픈 사내여.

나는 잘 있으마.

나는 떠내려가는 그림자처럼 손을 흔들며

증기 서린 목욕탕을 헤치며 나간다.



이원재

ed9902@naver.com

010-8949-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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