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작 「속사정」外 4편

by 네임뽀미 posted Aug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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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속사정 


 골목을 통해서 걸어가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일 텐데,

 그 길을 두고 왜 큰길로 돌아가는 걸까.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가만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밤거리 속을 걷기를 좋아했던 것도 같고

 걷는 나를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고

 그런 누군가를 스스로 의식하는 것도 같다.


 무리들 속에 나를 바라보고 있을 너를 생각하며

 한창 폭염 속에서 오후 걷기는 무리이다 싶고

 폭염의 기세가 나른해질 밤거리를 걷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하여 오늘도 골목길을 버리고

 크게 원을 그려 더 멀어진 큰길을 밟는다.


 골목길을 가로질러 지름길을 통하여 걸어가면

 훨씬 더 집에 빨리 도달할 텐데,

 빠른 길을 놔두고 왜 먼 길로 돌아가는 걸까.

 무슨 속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큰 길 위로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밤에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것도 같고

 드라마처럼 딴 짓을 하다가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앓고 있는 속병이 무뎌질 즈음에는

 큰길을 잠시 재우고 골목길을 깨우지 않을까 싶다.



 2. 따뜻한 말 한마디


 한, 가지에서 꽃이 피어날 때

 그 아픔을 누가 짐작하는가.

 맺힌 눈물을 아침 이슬이라 부를 때

 앞은 캄캄해지고 더 서러워 질 것을.


 내일을 시들지 않기 위해 흘리는 눈물이

 비로소 아픈 이슬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예쁘다', '향기롭다' 라고 말하기 전에

 '수고했다' 하겠지.



 3. 어느 순간에


 너의 이름과 비슷한 글자만 보여도

 그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멍청하게 자음만 같아도 네가 떠올라서

 한참을 또 생각하게 되더라.


 어디선가 그런 말을 하더구나.

 신발의 한쪽 끈이 풀리면 누군가 나를 생각하는 거라고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면 나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저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마음껏 기뻐하겠지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못하니 애꿎은 한숨만 나올 뿐.


 한숨을 내뱉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걷다가도

 신발의 한쪽 끈이 풀리면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도 같고

 꿈속에서 나타나면 네가 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같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도 할지언정 누구 하나 돌 던지는 사람 없고

 한숨을 흘리고 있을 바엔 이야기를 믿으며 한시름 덜어놓으련다.


 한시름 덜어지고 나면 어느 순간에

 너의 이름과 비슷한 글자를 보더라도

 다시 확인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자음이 같더라도 너를 떠올리지 않겠지.

 또 한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



 4. 불면증


 눈을 감고 이부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 줄 알았다.

 설마 감은 눈 그대로 아침 닭의 울음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눈을 감으면 곧잘 자던 나에게

 불면증이라도 온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해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아침에 일어나야 할 몸은 저녁이 돼서야 

 어깨가 무거워라 힘조차 못 쓴다.


 눈을 뜨고 천장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잠이 들 줄 알았지만

 정신은 더 말짱해지고 아침 닭이 울기도 전에

 피로에 쌓인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른다.


 불면증에 시달려 잠자리를 설치는 나에게

 스스로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 걸까.

 술을 왕창 마시고 그대로 뻗어서 누워야만

 저녁이 돼서야 일어나지는 몸이

 더 무거운 어깨를 들고 일어나려나.



 5. 철없는 발걸음


 괜한 오기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투정을 부리게 되는 단 한사람

 아마도 나, 라는 사람인거 같다.


 그 투정이 괜한 오기인 줄 알면서도

 나, 라는 사람을 받아주는 단 한사람

 아마도 엄마인거 같다.


 전날 밤, 복숭아가 먹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집으로 향하는

 내 철없는 발걸음을 흔들어 놓았다.


 주머니엔 천 원짜리 두어 장과

 오백 원, 백 원짜리도 아닌 십 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투정 하나가 만 원짜리 한 장이 될 때

 전날 밤의 엄마가 먹고 싶다던 복숭아의 맛이

 고스란히 다음 날의 철없는 발걸음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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