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회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 (아버지, 코끼리들에 대해 말하다 외 4편)

by 수지니 posted Aug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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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코끼리들에 대해 말하다


12시 오륙 분 전, 우리들은 광활한 밤의 초원을 누빈다

고요를 안고 무리지어 걸어가는 귀갓길,

저마다 저녁 햇무리를 한 짐 가득 등에 이고

긴 행선지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담는다

회사 안에서 도망쳐 나온 자리,

네온사인은 무거운 피로를 축 늘어뜨리고

포장마차엔 중년의 코끼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주름투성이 얼굴을 맞대고 소주에 취하는 밤,

나른한 오후부터 꼭두새벽까지 온 몸으로 지탱하던

그들은 함부로 버려진 서로 닮은 구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력이 좋고 온순한 그들은

얌전히 눈을 내리까는 것부터 배웠으며

입을 굳게 다물던 오랜 시간동안 묵직한 어둠이 피어났다

커다란 몸집의 그들은 술로 빈속을 달랜다

오랜 갈증에 목을 축인다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며 바라본 하늘은 어김없이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빳빳이 경직된 털에 걸린 별들을 호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우리들은 건기의 하늘 아래선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습관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에게 쉽게 길들여지는 것이란 황홀한 일이다

권위적인 표정을 지어보지만 한껏 부패된 자존심 뿐이다

방어의 수단은 커다란 몸에 잔뜩 짊어진 가족들이다

온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어두운 밤은 자꾸만 꿈자리를 맴돌고

아이들이 타고 싶어하던 대관람차만 눈에 삼삼하다

덥석 집어삼키고 싶은 순간들로 정적에 휩싸인다

뒤뚱거리며 걸었던 세상이 납작 엎드린다

오랜 취기에 별들이 잠시 앉았다 간다

공중전화박스에 달라붙어 통화를 남긴다

빈 속을 달래듯 일정한 넋두리를 되뇌이는 것은

그들만의 위로법이다

코끼리들은 부재중으로 남는다






2.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


체기가 가시지 않는다 집채만한 크기의 파도를 삼킨 것 같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붉은 빗소리가 범람한다

어부는 외딴집마냥 바다에 붙어있다

빈속을 달래보려고 한다 바닷바람이 자꾸만 혀끝에 감돈다

어부는 허공에 매달린 듯 멈추어 선다

간신히 한 끼의 새벽을 문 달이 두껍게 풀칠되어 있고

허름한 외투에선 시시때때로 전복되는 이야기들이 풀려나온다

숨가쁘게 쓰여진 이 곳의 하늘, 어둠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달은 이미 방향을 잃은 지 오래다

출항의 준비란 늘 불온해진다 갯바위는 알몸으로 떨고 있다

바다는 첨벙첨벙 물장구 치는 아이의 뒷모습을 집어 삼킨다

어부는 귀를 꼭 막아버린다

바다 저 깊은 곳에는 저를 닮은 얼굴들이 가득하다

물러설 수 없는 생들이 눈꺼풀 가득 출렁인다

입을 굳게 다물어도 갈증을 앓는 중이다

순항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거스를 줄 알아야한다

어부의 걸음이 쓰러질듯 위태롭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파도의 힘은 거세진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바람이 목덜미를 쓸고 간다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






3. 탬버린으로 불리는 여자


바람이 고꾸라진다 장미향수에 취한 모양이다 이름은 잊은 지 오래, 이곳엔 탬버린으로 불리는 여자가 있다

머리를 곱게 손질하고 밤새 서울 말씨를 연습해야 했던 여자.

여자의 열창은 사내들의 무릎 위를 겉돌았다 하얀 속살에 욕설이 달라붙고 여자는 온 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

몇 병의 취기를 끌고 온 사내들은 깔깔거리며 여자의 젊은 시절을 함부로 들춰냈다


화려한 조명이 몸을 섞는다 골목은 끈적한 달빛으로 뒤범벅된다

고물라디오에선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청춘남녀의 소식만 간간히 들려온다 달이 붉게 물들어간다

누군가와 짧은 입맞춤을 나눈다

머리채를 길게 늘인 밤, 가로등 불빛이 한 겹씩 허물을 벗고 여자의 반짝이 의상이 밤하늘에 찰랑찰랑 부딪쳐 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여자의 벌거벗은 몸 위로 예쁘게 수놓아진다

오늘의 운세를 엿보는 것을 좋아했던 여자의 꽃 같은 얼굴이 피어날 것만 같다 여자가 온 몸을 다해 빛을 내고 있다






4. 상상


소년은 자신의 집이 허물어지는 상상을 했다

매일 대문짝만한 밤하늘을 보며 방아 찧는 토끼를 상상했다


쉽게 찢겨나간 무수한 계절 동안 소년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세로

한 뼘짜리 창문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매일 밤, 토끼가 별 밭을 뛰놀던 상상,

아버지가 붙박아 놓은 별들

소년은 다락방 사이로 보이는 별들을 몰래 들여다본다


소년은 지붕 위에 걸린 달 위에

매일 밤 선명하게 손톱자국을 냈다

몽당연필로 그렸던 집을 뒤로한 채 바람은 어둠을 말뚝 박는다


어릴 적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소년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머리끝까지 덮고 잔다

천장 어느 모서리엔 소년의 이름 석 자만 남았다



 



5. 낙화


이 봄은 낙화했다

사내는 울고 싶었다

밤은 너무나 쉽게 찾아왔다

바람의 탓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꽃이 지기만을 기다렸다

사내는 이 거리의 영웅이여만 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하나의 큰 산이 되라고 하셨고

모두들 시들어가는 중이었다

사내는 매일 밤 촛불을 켰다

그림자들이 모여앉은 거리

바람소리만 붉어지는 거리

촛불을 켜자, 촛불을 켜자.

노 저어 걸어온 길들은 죄다 낡고 낮은 집들,

사내의 어깨엔 달빛이 무겁게 걸려있다

허리통이 부러지도록 달려도

주름처럼 깊어지는 밤,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은

오랜 근육통과 부랑하는 별들뿐이었다

싸구려 염색약과 다 풀린 실을 옭아맨다

서로의 하루일과를 함부로 질겅인다

가끔은 꺽꺽 쉰소리를 뱉어내기도 했다

붉은 몸뚱이들이 활보하는 거리,

사내는 키 작은 봉선화처럼 웅크려앉아

그 굵은 숨소리를 자꾸만 움켜잡는다





<인적사항>

이름 : 김수진

응모부문 : 시 (아버지, 코끼리들에 대해 말하다 외 4편)

학교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전화번호 : 010 - 7494 - 0411

이메일 : sujin04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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