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 6차 창작콘테스트 공모전/ 헤드라이트외 4편

by 다름이 posted Aug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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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이트

 

텅 빈 고속도로 위

무심히 뱉어진 그의 이력서 몇장이

시든 전단지처럼 뒹군다

저만치 보이는 건물들은

높기만 하고, 다시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희미한 빛조차 없는 그 길 위

충혈된 헤드라이트가 깜박 거린다

학자금 대출 독촉 전화에 깜박

면접관 앞 비루한 이력들이 깜빡

빛이 닿는 몇 개의 시간 끝

줄줄이 달려오는 치욕의 조각들이

몸을떤다

 

 

가난한 그의 체온이 뜨겁게 달아 오른다

한잔 술에 취기 어린 경적 소리 울리고

돌아보지 않는 그의 청춘 뒤로

이제는 빛을 잃은 헤드라이트만이

있을 뿐이다

 

 

 

 

 

희망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서른의 나이가

내 이력의 정중앙에 칼끝을 드러낼 때

그것에 놀라 오늘의 달력이 뒷걸음 칠 때

나는 얼려 놓은 희망 한덩이를 꺼낸다

 

 

뜨겁고 반짝이고 가슴 뛰는 희망

지금은 없다

느껴지는 차디 찬 금속 같은

야근과 세금과 적금에 파묻힌

식어버린 시체와 같은 너

콕콕콕 두통이 밀려온다

파닥거리는 시간 뒤로

얼음 위 춤을 추는 계집아이와

서걱서걱 그 위를 걷는 여자가 있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사이,

시린 바람이 내려 앉는다

 

떠나간 모습 뒤로 알람이 울린다

눈가에 뭉쳐진 피로를 안고

용산 직통 전철에 몸을 구겨 넣는다 

 

 

상자

 

수레의 무게에 몸을 휘청이는 밤공기가 그러하듯

쩔뚝이는 발자국이 남겨놓은 지난 사연처럼

시어빠진 김치와 함께 넘긴 찬밥의 무게처럼

어깨까지 쌓인 상자 더미를 돌아본다

 

어둠이 내린 그 길 그 골목

각자 다른 상표를 입은 상자들이

몸을 쭉 뻗고 누워있는 수레 위

김씨 할머니의 주름진 하루가

몸을 기대오는 그 곳

 

고물상 한켠에 낡은 시간들이고단함에

그을린 손 위에

몇천원의 돈이 놓어지는 시간

그녀의 삶이 허공에 흩어진다

 

 

 

어떤 전시회

 

 

눈가에 뭉쳐진 어제의 피로가

햇살 아래 반짝인다

실직 당한 남편의 구부러진 등허리 같은

하루 위로 시름시름 그녀가 걸어간다

 

생기 잃은 얼굴들을 잔뜩 실어

무거운 버스 안으로 그녀의 얼굴을 내민다

정제된 고단함과 지쳐버린 소망들이

조우하는 시간

덜컹이는 어떤 전시회가 시작된다

 

 

GS편의점이 형제 숯불갈비가 야곱 빵집이

풍경화가 되어 지나간다

어쩐지 버스 안 승객들을 닮아

흔해 빠진 그림들이

그녀의 틈 사이로 무심히 흘러간다

서로의 발끝에 맺힌 서러움쯤은

신발로 다 가려 버리고

저마다 기다리는

그림을 찾아 흘러간다

 

 

저 멀리 그녀를 닮은 그림이

천천히 다가온다

울음을 머금은 채

시린 바람에 위태롭게 떨고 있다

전시회 끝을 알리는 여자를 향해

삑 하고 울어 버린다

그것을 신호로 떠밀리 듯

그림 속으로 허둥지둥 뛰어간다

한편의 스케치가 되어

점점 멀어진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한 낮의 햇빛조각

외면하며 오르는 도서관 계단 위에는

지나온 자리에 밟혀진 젊은 시간들이

갓 잡은 생선처럼 팔닥팔닥

 떨어진 꽃잎들이조용히 떨고 있다

 

 

조화(調和)로운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조화(造花)가 되어버린 어린 청춘들이

책한권 앞에 두고 시작한 묵년의 시간

싱그러운 청춘을 노래하던 하루가

그만 지쳐돌아가면

그 위에 딱딱하게 굳은가짜 꽃 하나 놓여있다

 

 

절대로 시들지 않을 거라는 달콤한 언약에

 떨구어낸 빛나는 생들이 서럽게 울며

 천천히시들어 가고 있다 꽃대를 푹 꺾어 버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맥없이시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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