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외4편

by 풋사과 posted Apr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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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감사와 칭찬이 엉겨있다

바이러스 창궐이라 불리는 이름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 도래지 같이 요란하다

어쩌면 먼 곳으로부터 당도한 기착지거나 와르르 빠져 나간 허무다

오한이 간질거리며 추녀 끝에 매달려 낙숫물로 지는 장마철

글썽이는 애수의 거리에서 인력거를 탄 귀족이 잃어버린 옛날을 찾아 떠나는 여정같다

이 서늘한 마각의 정체는 누구인가

거두어도 거두어도 흐름의 시간만 배열되고

섣부른 백로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달 뜬 가슴 하나 저무는 노을에 걸어둔 채

빨간 슈트의 어나니머스같이 신분이 없는 불온이다

한 구절의 시편을 읊조릴 때 해마다 혼자 두방망이질 치던 신춘의 허무같아서

차라리 나를 더 비운다

한해가 마지막 잎새같이 달려있는 거울 속

감사와 칭찬이 갈등하는 사이 감사하는 마음을 저미어 두고 한 잔의 에스프레소로 위로를 건낸다

연질의 근육이 자꾸 가려운 건 몸을 칭칭 감은 한기가 괜히 트집 잡고

게으른 콧소리로 재채기를 부르는 몸살이다

 


당신을 위한 평전

 

아무리 구박을 해도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애완견 일거예요, 배반을 모르니까

피로한 날 녀석의 혀는 커피잔에 설탕 녹 듯 녹죠

그런 당신은 다시 올까요, 어느 때 사냥개처럼 돌아 올까요

오시는 걸 믿나요, 안 오는 줄 알면서 믿고 싶은 거죠

바보같아서 공주가 돌아 오면 충성을 다 할 게요

처음부터 원래 난 당신의 충복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요, 내 머리를 쓰담해 주니까요

그러면 내면으로 부드러운 털이 자랄 거에요

귀가 늘어지고 꼬리를 흔들어요, 눈을 마주치면 위험해서

충견의 속내도 이빨을 날카롭게 드러내요

그럴 땐 꿈속에서 비굴하게 시추가 되세요, 귀여움을 독차지 해요

어쩌면 속살을 핥게 될지 몰라요, 오르가슴에서 멈추지 말아요

내려 올 때 녀석은 허둥대지만요, 목줄이 풀리면 금줄로 갈아야 겠어요

금기 교육을 시켜야 관계가 유지되거든요, 절제도 가르쳐야 하고요

악수보다는 달을 보고 짓지 않을게요, 개뿔같은 세상은 착각이에요

개털같은 세상도 흔하진 않죠, 개코같은 녀석들의 세상이에요

프라이버시의 비밀이 없어졌으니 냄새를 맡고 들이 닥치기가 일쑤에요

하이에나처럼 게걸스레 뜯어 먹죠, 역하면 꿈에서 깨어나세요

꿈이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신문에 박혀 나와요

현실도 꿈인지 나를 못믿겠어요

삶을 증명해 보려해도 보증인이 없어서 슬퍼요

 

 

 

 

복제되는 시간

 

경로석에는 눈 뜨는 시간은 몽환의 세상을 버리는 앵무새의 시간

혼자 사는 남자들의 특징처럼 어제 벗어논 양말을 다시 신는 앵무새

느추한 시간의 종말들이 효모균처럼 발가락의 틈을 공략하는 부리가 있다

푸른 숲에 갇힌 오늘이 지저귀는 둥지로 새롭게 부화하는 내일이다

앵무새 울음조차 흐름의 시간을 내일로 복제되는 건 포란의 시간이라 하지

내일이 박제된 박물관에 들어서면 출근시간을 발설한 어제가 도열해있는 오늘

미래로 박힌 네모 난 창을 통과하면 오늘이 복제된 내일의 날개가 돋는다

어제의 시간이 까맣게 변색되어 가는 동안 경로석에 앉았던 앵무새는 하차했다

핑크 발판에 다소곳 발을 얹던 임신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내일을 끌고 간다

어제가 퇴색된 시간은 눈을 감는 시간, 그렇게 내일의 아이는 다시 눈을 뜨고

어제 벗어논 바지를 끼워 입고 임시 저장된 게임의 다음 엔터키를 두드린다

당신이 내일을 복제하는 동안 시나브로 경로석을 양보한 생무새가 하차 한다



망둥어

 

섬초 뿌리까지만 썰물의 물결이 자랐죠

물의 말미에 수관을 달고 꼬리친 것도 바다의 어귀를 붙잡고

살고자 했던 벼랑위에 선 홀어미의 발버둥이었 겠지요

시야에 다 잡히지도 않은 돌섬의 군락으로 물비늘만 시계추처럼

째깍이며 째깍이며 해안선의 둘레를 맴돌고 또 맴돌겠지만

봄바다의 가슴이 이유없이 헐렁해지면

부풀어 오른 계절이 어느새 뻘의 피부를 벅벅 긁어 흰 각질을 흘려요

해풍으로 조금씩 홀어미의 손마디를 닮아가는 중이에요

질긴 해류에 펼친 그물 따윈 뻘의 생명에겐 거추장스런 낯선 도구일 뿐이잖아요

물빛으로 한달음씩 뛰어 오른 당신은 각자의 숨구멍을 밀물 속에 숨겨 살아왔죠

밤새 기다렸던 물때에 가족의 안부를 묻는 시간

은빛 세류에 전송되던 뻘의 기별과 짙은 음향으로 흐르던 파도의 하모니

그 음계를 짚고 뛰어 오른만큼 어미에 대한 외로움도 컸어요

적의는 뻘속까지 아직 도달하지 않고 뻘의 숨이 차 오르는 만큼만 주름이 늘었죠

 


아버지와 소금

 

구레나룻에다 바다를 바삭 말렸죠

해풍을 수염에다 풀어 놓을 때마다 하얗게 뼈대를 드러내는 대양의 얼굴

버석, 껄끄러운 턱수염이 가려운건 태양의 자외선이 바다를 간질이기 때문이죠

실연당해 아린 눈물을 흘린 적 있었죠

입술 위로 바다맛이 뚝뚝 질 때는 해수는 나를 끌어당겨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죠

그 벅찬 가슴과 가슴이 마주 했을 때 나의 초라한 염전은 퍼런 용수에 융해되고 말아

작은 의미는 큰 풍랑으로 출렁거렸어요

용소가 동공에 쓰라린 담수로 항상 눈으로부터 사소한 의미가 흘렀나 봐요

바다를 구레나룻에다 바삭 말려 보아야 흰 뼛가루를 흩날릴 수 있다는 걸 알 듯이

사랑도 야위다 보면 눈물에도 뼈가 있다는 걸 알죠

바다의 하얀 뼈대가 유물로 남겨질 때만 눈물이 앙금으로 숙성된 맛을 내죠

바다를 널어 태양의 알갱이를 건져 올리 듯 구레나룻에 피운 소금꽃을 건지는

아버지가 점점 증발해 가는 바다가 되어가고 있었죠



albam235@hanmail.net

010-2753-2136

최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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