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길을 걷다
논길을 걷다
진흙 발가락 뿌리에 고여오는 溫氣
한걸음, 한걸음
느림 步마다
수천갈래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붉은 벼꽃이 피고 진다
논길을 걷자
바삐 뛰지 않아도
길은 4천 년 농부의 知慧로
생명의 싹을 틔우기에 넉넉하니
동서남북,
실루엣 빛 노을 속으로,
흙뿌리로……
그 한 잔털 위를 걷자
수신불능지역(X)
꼬치친구가 귀촌할 좋은 땅을 찾는단다
이보게……
감이 멀다며 손전화가 말문을 걸어잠근다
행여, 그곳이
이 누리일 리 없을
전원에 도화가 피고
구름계곡에 노니는 학의 춤사위를 보고픈 건 아닐 테지만
친구가 찾는 곳이
어쩌면 잠지 잊고 산 순수함의 경계이거나
오래된 미래의 둥지이기를
산기슭 낡은 촌집 대들보에
말벌하나가 옹이진 노송을 처마삼아
둥지를 짓고 있다
나는 재간 있는 일꾼이 들려주는 천년의 솜씨에
귀를 담근다
왜
벌들은 지고한 순수함을
정육각형 벌집으로
차곡차곡
짓고 허물며
이야기하는가를 들으며
장터
개굴개굴 소리에 밤새
뒤척뒤척
낮에는 들리지 않던 밤 장터소리
램프 등을 끄면
눈에 띄지 않던 별마저 장터에 쏟아진다
참
이 장 한 번
크다
밤 장터에 내 꿈 하나
슬쩍 흥정을 붙였다
제국의 텃밭
오래된 빗살무늬마냥
햇아침 빛살이 텃밭에 비스듬히 걸쳐있다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가
일렬로 선 사열대 앞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농부가 섰다
앞에 총, 좌로 봐!
농부는 거수경례로 답하고 텃밭에 들어선다
첫 두둑의 고추들
붉고 푸른 태극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았다
옆 두둑엔
무성한 초록 잎사귀로 은폐한 서리태가
검은 총알을 장전한 채 몸을 숨기고 있다
대검을 치켜세운 대파 사이로
바람이 싹둑싹둑 잘려져 고랑으로 모인다
잎을 몇 단씩 쌓으며 일용할 보급품을 대는 채소
줄기를 뻗어 그물망을 타고 오르는
초록군복의 오이는 노오란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제국의 텃밭에 깃발을 펄럭인다
고랑을 따라 바람길이 나고
한 철의 폭우와 전쟁을 겪었으며
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들로
농부는 매일매일 마음 밭, 시름을 솎아냈다
첫 열매가 익어가는 7월, 그 바람엔
첫 키스 향이 스며있고
바람길을 따라가는 농부가 있다
호우주의보
나도 빚이 있어야겠다
평생 갚을지 모를……
남동풍을 따라 장마전선이 북상했다
하루반나절
디지털 바코드같은 비가 내리고
또 반나절은 내 속에서 멜랑콜리한 먹구름이
삐쳐나오려는 전기자극을 움켜지고 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들어서야 했다
한 푼 빚지는 걸 못 참아 할 일도 아니었다
빚이 있다는 이유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래야 했다
바깥나들이 옷들이 옷장에서 눅눅하다
벽지를 타고 스며든 물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 눅눅한 얼룩이 핀다
디지털 바코드같은 얼룩이
굵고 가늘고, 가늘고 굵은…
필명 : 김원 (본명 김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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