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by 백세주님 posted Apr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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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을 걷다

 

 

논길을 걷다

진흙 발가락 뿌리에 고여오는 溫氣

한걸음, 한걸음

느림 마다

수천갈래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붉은 벼꽃이 피고 진다

 

논길을 걷자

바삐 뛰지 않아도

길은 4천 년 농부의 知慧

생명의 싹을 틔우기에 넉넉하니

동서남북,

실루엣 빛 노을 속으로,

흙뿌리로……

그 한 잔털 위를 걷자


  

수신불능지역(X)

 

꼬치친구가 귀촌할 좋은 땅을 찾는단다

이보게……

감이 멀다며 손전화가 말문을 걸어잠근다

행여, 그곳이

이 누리일 리 없을

전원에 도화가 피고

구름계곡에 노니는 학의 춤사위를 보고픈 건 아닐 테지만

친구가 찾는 곳이

어쩌면 잠지 잊고 산 순수함의 경계이거나

오래된 미래의 둥지이기를

 

산기슭 낡은 촌집 대들보에

말벌하나가 옹이진 노송을 처마삼아

둥지를 짓고 있다

나는 재간 있는 일꾼이 들려주는 천년의 솜씨에

귀를 담근다

 

벌들은 지고한 순수함을

정육각형 벌집으로

차곡차곡

짓고 허물며

이야기하는가를 들으며 



장터

 

 

개굴개굴 소리에 밤새

뒤척뒤척

낮에는 들리지 않던 밤 장터소리

램프 등을 끄면

눈에 띄지 않던 별마저 장터에 쏟아진다

이 장 한 번

크다

 

밤 장터에 내 꿈 하나

슬쩍 흥정을 붙였다



제국의 텃밭

 

오래된 빗살무늬마냥

햇아침 빛살이 텃밭에 비스듬히 걸쳐있다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가

일렬로 선 사열대 앞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농부가 섰다

 

앞에 총, 좌로 봐!

농부는 거수경례로 답하고 텃밭에 들어선다

첫 두둑의 고추들

붉고 푸른 태극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았다

옆 두둑엔

무성한 초록 잎사귀로 은폐한 서리태가

검은 총알을 장전한 채 몸을 숨기고 있다

대검을 치켜세운 대파 사이로

바람이 싹둑싹둑 잘려져 고랑으로 모인다

잎을 몇 단씩 쌓으며 일용할 보급품을 대는 채소

줄기를 뻗어 그물망을 타고 오르는

초록군복의 오이는 노오란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제국의 텃밭에 깃발을 펄럭인다

 

고랑을 따라 바람길이 나고

한 철의 폭우와 전쟁을 겪었으며

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들로

농부는 매일매일 마음 밭, 시름을 솎아냈다

첫 열매가 익어가는 7, 그 바람엔

첫 키스 향이 스며있고

바람길을 따라가는 농부가 있다

 


호우주의보

  


나도 빚이 있어야겠다

평생 갚을지 모를……

 

남동풍을 따라 장마전선이 북상했다

 하루반나절

   디지털 바코드같은 비가 내리고

     또 반나절은 내 속에서 멜랑콜리한 먹구름이

        삐쳐나오려는 전기자극을 움켜지고 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들어서야 했다

     한 푼 빚지는 걸 못 참아 할 일도 아니었다

 빚이 있다는 이유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래야 했다

바깥나들이 옷들이 옷장에서 눅눅하다

 벽지를 타고 스며든 물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 눅눅한 얼룩이 핀다

 

   디지털 바코드같은 얼룩이

     굵고 가늘고, 가늘고 굵은



  

필명 : 김원 (본명 김재석)

dream21sek@daum.net

010-385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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