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공모전 시 응모 (꿈꾸는 월경 외 4)

by 고요미소 posted Oct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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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월경


저마다의 환호와 탄성이 터지는 축제의 밤

창문 안 사람들 웃음 짓는 어느 저녁 아래

발아되지 못할 운명인 줄 모르고

제 몸 울컥 쏟아낸 또 다른 불꽃이 허공에 그대로 결박되었다


허공엔 귓바퀴가 없어

한철 매미 같은 울음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고

성냥팔이 소녀 두 눈에 심은 성냥 한 개비의 시간이었음을 

끝내 깨닫지는 못한 불꽃은

아직도 두 다리 사이 드리웠던 따듯한 그늘 추억하는 중이다


흙냄새를 찾아 뒤적이는 수만의 알갱이들


급한 성미 탓에

투명해진 알갱이에 점하나 생길 여유 없이

불꽃


새빨갛게 핀 울음이 비명같이 만개하는 그곳에서

또 다시 성냥을 집어 든다


골똘히

작은 불티 바라보며

미소하는 자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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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된 남자

 

 

 

 

1

딩동! 타이머가 울리면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닭

처음으로 식탁에 올려져서는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올 수 있다니!

겨드랑이 바짝 붙이고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세상을 향해 대절

조아릴 대가리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알맞게 조리된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각자의 몫만큼

교양을 나누어 가진 식탁 아래 얌전한 두 발 나란히

 

2

딩동! 도착 음이 울리면

엘리베이터 문을 걸어 나오는 한 남자

무언가 허전한지 머리를 매만지다

층수를 알리던 여자의 음성이 거세된 사실을

깨닫고

혼자인 것이 조금 아쉬울 뻔했다

, 아차! 하고 되묻기를

 

그런데 말입니다

기계에도 목소리가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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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손(白手)의 하루


어느날 눈을 떠보니 키운 적 없는 맨질맨질하고 투명한 것이 발뒤꿈치에 붙어있다

그 속엔 위장도 있는지 소화 잘 된 뒤꿈치는 살 비늘에 켜켜이 스스로의 나이테를 새겨 넣고

그것의 꾸준함에 스스로도 적잖이 놀라워

방심하는 사이 손톱이 뒤꿈치를 향한다


스스로로부터 매일 쫓겨나는 손톱은 끈질기게 붙박여있는 그것이 못마땅한 게 틀림없다

이것은 손끝 야무지게 힘을 지탱하고도 잘려나간 손톱의 복수다

하릴없는 골방의 흰 손의 결심이다


뜯자, 배만 불리는 얄미운 조직을 갈가리 찢어주자


그동안 가진 모든 힘을 손끝에 모아 새빨간 속살이 아린 숨을 내쉴 때까지

흰 손은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모든 신경과 감각은 손과 발에 집중되고 조용한 숨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운다

생각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시간들이 매일 압축되고 기억은 점점 얇아진다


목적 없이 태어난 굳은살이 꼴 보기 싫은 것은 손톱뿐만 이었는가?


오기만 남은 뒤꿈치는 뜯을수록 세상에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고

손톱이 알아채지 못하게 날마다 조금씩 바닥과의 간극을 벌려놓는다

뒤꿈치가 유난히 노란 사람이 가장 높은 허공에 막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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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통조림


친절하게 유통기한표시 찍혀져 나왔으니

속에 무엇을 품든 아무도 겁낼 필요가 없었던 나날들이 억울해

펑하고 터질 줄 알았건만


기껏 목 딴 소리 쉭쉭 바람 새어나가고

보글보글 기포마저 끝내 발악하다 찔끔하고 고인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무단투기금지 팻말 위로 던져버렸다


아무런 팻말 하나 내 앞에 세워보지 못하고 무능한 팻말을 탓하는 것은 어쩐지 겸연쩍은 일이라서

그만 조용히 지나가려는 찰나

똥파리 한 마리 앞에서 윙윙 거린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경박한 자유로움이 여기보다는 틀림없이 좋아 보이는 것이라

네온사인 십자가에 대고 협박 같은 기도를 하고는

파리, 통조림에 앉자마자 나지막이 묻는다


야야, 너도 번데기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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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센터 남자


이삿짐센터 젊은 남자는

한때는 두 손으로 온 세상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던 미술학도였지만

두발로 디딘 현실에서 그의 손은 무능태


젊음이라는 가장 큰 사치를 부린 대가로

마감 없는 할부 명세서 다달이 받아 들고서

화창한 새봄맞이 이사철을 맞아 얼굴 모르는 그녀를 분주히 옮긴다


갖가지 책의 취향을 따져보고

혹시나 같은 낭만을 가진 여자일지도 몰라

알쏭달쏭한 신비로운 그녀에게 어울리는 색은 보라색

꽃무늬 옷을 즐겨 입는 향긋한 여자의 두 손에

꽃다발을 그려 넣고 가만히 웃는 표정을 상상한다


홍조 빛의 뺨 위로 가늘고 긴 그녀의 머리카락이 가슴 언저리에서 살랑거리도록

섬세하게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마음에 옮기자 설레는 마음 못이긴 땀방울

톡톡 터져 나오고

이마에 닿은 목장갑이 수줍음에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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