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작 - <밤이 깊어 갈 때>외 5편

by 아니이럴수가 posted Nov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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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깊어 갈 때


권효진


우리가 늘상 생각하는 것들은


머리를 써가며


손을 써가며


생각하는 것들은


저기 지나가는 저 해가 지기 전에는


우리의 머리를 떠날 생각하지 않는다


 


가로등이 하나하나 켜지며


오늘의 벌건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는 그 때가 되어서야


우리의 잠든 생각들이 하나 둘 깨어날 때가 되어서야


밤이 깊어갈 때


잠든 별빛들이 하나하나 돌아오면서


우리의 머리에는 새로운 생각들이 찾아온다.


 


오늘 오전 그저 지나쳐갔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친구의 얼굴


나날이 오르는 채소 가격을 들여다보며 한숨쉬던 어머니의 얼굴


길거리에 앉아 공허히 앞을 쳐다보던 그 노숙자의 얼굴


그제야 떠오른다


 


 


라면 혼자 먹는 날


권효진


오늘도 바쁜 하루


산더미 같이 쌓인 일들이 하나씩 줄어들고


옆사람도 하나씩 사라진다


배가 조금씩 고프다


하지만 밥을 먹을 순 없다


아직 할일이 남아있다


일이 하나둘씩 줄어든다


옆사람도 하나 더 사라졌다


 


어느새 방은 텅 비고 나혼자 남았다


역시나 또 라면을 먹어야겠다


 


물을 끓인다


스프를 붓고 물을 붓는다


4분동안 기다린다


낮시간동안 만난 얼굴들이 지나간다


 


너무 조용하다


괜히 부스럭부스럭 소리


후르륵 후르륵 소리를 내며 라면을 먹는다


 


집 가는 길


권효진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모두다 제각기 하루의 짐들을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


하루의 스트레스에 찌든 얼굴


무표정한 얼굴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인데 즐거운 얼굴 하나 없다


 


집에 가는 길


사람들이 피어낸 김으로 서린 지하철 창문.


그들의 하루의 고됨이 묻어나온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타서 터덜터덜 내린다


그렇게 또 반복되는 하루


 


 


 


 


 


 


 


헌 신발


권효진


할머니 집에 가면


꼬질꼬질해서 몇 년치 먼지를 가득 머금은 신발 두 짝이 있다


한 번 씻을 법도 한데


더럽고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몇 년을 신발장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있다


 


할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지 벌써 오 년이나 지났는데


신발은 그 자릴 떠날 생각이 없나보다


 


 


 


 


 


 


 


 


 


 


 


 


 


일기장


권 효 진


어릴 적 일기장을 꺼내보면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여백은 거뭇거뭇한 손자국이 남아있지만


너덜너덜해진 종이에 꾹꾹 눌러담은 진심이 남아있다


 


오늘은 언니가 아팠다마음이 아프다


몇 자 적지도 않은 일기에


괜시리 콧등이 찡해진다.


 


 


 


 


 


 


 


 


 


 


 


 


 


낮잠


권 효 진


잠이 쏟아진다


새벽에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했던 고민들이


어제 오후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들이


어제 저녁 잠을 쫓기 위해 먹었던 커피가


오늘 낮이 되니 잠으로 쏟아진다


잠이 쏟아진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볼 때는 그렇게도 오지 않던 잠이


책상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려니


그렇게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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