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을 남겼을까-
익숙한 그 얼굴 뒤돌아서 잡은
차가운 그 대문 흐느껴 울던
초라한 가로등 눈부셨던 그 별들
그 자리, 그 대로, 있을 줄 알았네.
그리움이 그리워질
그 만큼을 견뎌왔던 날들 동안
남겨졌을 그대 또한 버텨냈을 그 날들이 전해져와
지나온 날 그 무엇을 남겼을까?
세상의 모든 짐 가슴에지고 버틴
흐려진 뒷모습 짓눌린 마음 버텨온 그 모든 것
시간에 밟혀 버리고
초라한 욕심마저도 빼앗겨 버렸네.
바램들이 바래졌을
그 만큼을 지나왔던 언덕 동안
남겨졌을 그대 또한 넘어왔을 그 언덕이 전해져와
지나온 길 그 무엇을 남겼을까?
익숙한 그 얼굴 마주하고서 웃는
고요한 내 마음 반을 내어드려
그대가 쉬어갈
그런 자리 남겼네.
-마음의 공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 어딘가에 동그라미 선이 그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그 선이 점점 선명해져
내 마음 한가운데에 공터가 생겼다.
계절이 바뀌자 그 동그란 공터는 점점 가라앉았다.
단이 생겼다.
동그란 공터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누군가 걸터앉을 수 있는 단이 되었다.
내 마음 동그란 공터에 단이 생겼다.
누군가 앉았고, 누군가 떠나갔다.
누군가는 오래 머물렀지만, 이내 사라졌다.
이젠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자, 시간이 멈췄다.
시간도, 계절도 그 무엇도 없다.
내가 그 공터 한가운데 가볼 수만 있다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건너 볼 수만 있다면
언제부터 생겼는지, 누가 그어놨는지도 모르는
그 동그라미 선을 생각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건 선이였을까? 아니었다면?
생각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이 생각나지 않았다.
-樂-
그 하나하나가 조용히 일렁거리다
살아있는 듯 요동치더라고
그러더니 서로를 엮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더니 순식간에 거대해지더라고
나를 감싸는 듯 아닌 듯
그렇게 가둬 버리더라고
벅차오르고, 황홀한 이 순간에
빨려 들어 갈 때 쯤
끝이 나더라고
오늘 이 음악이
-조용하세요-
아무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잖아요.
아무 말을 들을 필요가 없을 때가 있잖아요.
아무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요. 내가 있잖아요.
지금 그렇게 생각해요.
나에게 필요한건, 아무 말도 아니에요
내 생각이에요
-시간이 지나간 자리-
오늘 문뜩 그 때 받은
그 꽃이 생각이 났다.
얇은 여러 가닥의 기억을 더듬어
그 꽃의 뭉텅이를 발견했을 때
온몸에 바람이 들 듯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 왔다
오늘 문뜩 희끗하게 아름다웠던
그 기억이
먼지에 엉켜 뭉그러져 있을 때
내 무심코 흘려보냈던 그 시간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초연하게 타들어간 너의 잎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흘려보낸 그 시간이
너를 밟고 지나갔나보구나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이
부둥켜안고 있는 꽃잎 곁으로
나는 보았다.
한 찰나의 섬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