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꽃이 지고 나서
봄인줄 알았고
매미 노래 끝나고 나서
여름 인줄 알았어.
단풍잎 떨어지고 나서
가을 인줄 알았고
눈얼음 녹고 나서
겨울 인줄 알았어.
다른 인연 겪어보고 나서
너 인줄 알았고
너와 이별하고 나서
사랑 인줄 알았어.
먼지가 소복이 앉을 때
먼지가 소복이 앉은 오래된 책을 꺼내 보았어.
후 후 입김을 불어
먼지를 털어 놓았어.
책을 펼치는 그 순간,
그만 종이에 손을 베이고 말았어.
먼지가 소복이 앉은 오래된 기억들을 들추어 보았어.
애써 괜찮은 척
천천히 조금씩 마주보았어.
기억과 대면하는 그 순간,
그만 마음에 상처를 받고 말았어.
그렇더라.
오랫동안 꺼내놓지 않아서
안심했었어.
먼지가 소복이 쌓이면
괜찮을 거라 여겼었어.
착각 이었나봐.
여전히 나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줄 수 있더라.
지금도 아프더라.
별의 가르침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별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내 손에 별이 가려졌다.
가려진 별은 빛나지 않았다.
사랑은 무엇으로 하는가
사랑은 무엇으로 하는가.
잠 못 이루던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그 밤으로 사랑을 한다.
가슴 떨리던 처음 손을 마주 잡은
그 거리로 사랑을 한다.
잊을 수 없던 입술이 포개어질 때
그 향기로 사랑을 한다.
사랑은 무엇으로 하는가.
기꺼이 웃어주며 떠나던 초라하게 떨리는
그 그림자로 사랑을 한다.
한 때는 익숙했던 이제는 씁쓸하게 변한
그 기억으로 사랑을 한다.
눈물로 앞길을 축복했던 차가운 바닥에 꿇은
그 무릎으로 사랑을 한다.
호수는 어리석지 않았다.
강물은
감당하기 버거운 것들 모두를
흘려보내고
호수는
감당하기 버거운 것들 모두를
간직한다.
누가 똑똑하고
멍청한 걸까?
강물은
좋았던 모든 순간조차도
흘려보내고
호수는
좋았던 모든 순간마저도
간직한다.
누가 용감하고
겁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