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示
1비로소 시, 보일 시
나는 회고한다
경성, 빼앗겨 버린 나의 황폐한 들은
나의 조국이자
나의 희망이자
나의 유일한 기도였음을.
경계
바다에는 국경이 있지만
바닷물에는 국경이 없다
땅에는 국경이 있지만
역사에는 국경이 없다
그저, 흘러가게 두어라.
낮달
밤이란 문을 여닫고
가만히 달을 보아라
낮이란 문을 여닫고
가만히 해를 보아라
너와 닮은 달이
너를 닮은 해가
이토록 눈이 부시다
존재
발 빠른 너는
나에게 바람과 같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너는
그림자와 같다
나를 집어삼키는 너는
어둠과 같다
만물이 이토록 너를 닮아있으니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리본
당신이 노닐던 거리를 걷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표정을 한 채
나는 나에게서
그 아이들을 봅니다
그 해 봄
따뜻하지만 추웠던
유난히 바람이 찬 바닷가에
흩날리는 노란빛은
유난히 밝고
유난히 외롭습니다
지은이: 정연우
이메일: qant1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