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작 - 트럭 외 4편

by kekeke posted Jan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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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


 1.

 트럭 부품들이 난무하게 깔린 카센터

 속도의 기억들이 둥글게 말아 줄 서있다

 한 때 검게 탄 고속도로 위로

 시멘트를 세차게 돌리며 질주했던 트럭

 이제는 분할된 질주만이 그곳에 널브러져

 카센터의 탁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트럭이 돌렸던 것은 자신의 힘찬 포부였을 것이다

 트럭은 매끈하고 단단한 자신의 바퀴를

 견고하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트럭이 죽음의 긴 목구멍을 넘어가며

 자신의 무기력만이 허공에 떠 헛돌음을 알아차렸다

 그 후 아픈 부검을 거치고 부픔으로 살아남은 트럭

 오늘도 그저 장식품마냥 우두커니 앉아

 그곳을 들렸다 가는 사람들으 배웅한다


 2.

 남자는 매일 같이 산책을 한다

 사람들은 그의 외면상을 볼 때부터

 그의 삐딱한 걸음을 인지한다

 달리던 감각들을 상실한 남자

 빈 허공과 도보를 뛰던 나날들이

 의미 없이 그의 다리를 빚고 있다

 하루하루 다리를 메우던 질주의 기억은

 매일 아침 뜨기 싫은 눈을 뜨면서 혹은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뒤척일 때마다

 남자의 가슴 한 켠으로 조금씩 사라진다


 


 문득 느껴지는 풀냄새에 뒤를 돌아본다

 풀들은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찌푸린 하늘은 풀잎에 수놓을 준비를 하고

 나는 풀잎에 마음을 베였다


 굴곡진 풀잎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하루

 발끝을 간질이는 잎들

 발끝에 물드는 풀독들

 나는 성장하고 있다


 악몽을 꿀 때마다 눈을 감고 풀밭으로 떠난다

 한밤의 풀잎소리가 발목을 붙잡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다

 밟힐수록 끈질기게 치고 올라오는 풀들

 내 몸에서는 풀냄새가 났다


 내 방의 풀잎에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


 


 밤의 벌어진 입속에 넣은 손목이 시리다

 캄캄한 구멍이 해구처럼 깊다

 파리한 손목에 새하얀 이불보가 수초처럼 감기고 

 소금처럼 자글자글 구르던 별들이 손톱에 와 박힌다

 정수리를 떨어뜨리며 고꾸라지는 달을 보며 잠든다


 소리 없이도 깊은 잠을 내리치는 꿈결은

 밤의 잇몸에 자잘한 흠집들을 만든다

 밤의 내피는 연분홍색이다 무방비 상태인

 속살은 꾹꾹, 누르는 손톱자국들을 받아낸다


 작살에 꽂힌 채 잠든 고래, 바닥에 몸을 눕히고 비튼다

 심해의 바위 같은 고요, 침대 밖으로 늘어뜨린 손목,

 커튼자락에 걸린 채 흠칫한다

 밤의 벌어진 입속을 다 알 수 없다,


 책을 덮고 나는,

 천 원자리 지폐 세 장을 쥐고

 현관을 나선다


 저수지


 무성하게 키를 키운 갈대들, 이끼들

 몸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저수지

 

 하루 종일 앉아있을 궁리로

 어떻게든 집에서 엉덩이 뗄 궁리로

 배 불룩한 사내들이 저수지에 나와 있다


 저마다 접이 의자 하나씩 챙겨와 앉아

 물가로 긴 문장 하나씩 드리운 채 졸고 있다


 배에 비해 얇은 사내들의 팔이

 작은 마침표 하나 건질 수 있을지

 물음표가 저수지 곳곳을 헤엄치며

 여기저기 널린 미끼를 야금야금 해치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내들의

 졸음을 잡아 물고 날아가는 잠자리

 미동도 없던 사내들의 낚싯줄이 이따금

 헛바람에 흔들리곤 하는

 어둠이 하나둘 풍경을 지워가는 시간


 텅텅, 바람이 제 입만 채워가는 집을 향해

 혼자 짐 싸는 한 사내의 빈 손


 저수지에 가둔 물이 언젠가 홀로 썩듯

 저 안에 갇힌 물음표도 언젠가 썩어

 물에 녹아 버릴 텐데,


 기차를 타고서


 밤이면 누구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는 걸까


 바닥에 떨어뜨린 추억의 두루마리 속에서

 굴러가던 만월은

 달빛에 젖은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길 위에 쓰러진 별들을 뒤로 하고

 푸른 사춘기 속에서 울음 울던 기적소리

 낡은 이정표와 함께 펼쳐졌다


 초연한 유년의 굴레

 방향을 알 수 없는 밤마다

 눅눅해진 고향 길이 마르며

 때늦은 추위를 느끼던

 나의 밤하늘 위로 둥근 자국이 지나갔다


 폐 속 깊이 박힌 눈빛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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