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난 먹비가 오면 그녀를 삼킨다
지난 해 토해놓은 메아리가 제 길 찾아 돌아왔을지 모르니
다시 잘 타일러 돌려보내야 한다
흩어져 버렸다
뿌려 흩어져 하늘이 뿌옇다
미녀는 냉담했다
그녀의 블라우스 자락에 키스하고 매끈한 곡선 끝 매달린 여린 손을 잡아 올렸다
녹고 있었다
끓는 반죽 속을 헤집어 가장 얇은 가락을 찾아 새끼에 걸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을이 있단 말이야
오늘처럼 근심이 뜬 밤엔 별을 먹고 싶다
부지런히 먹질을 하여 나만 볼 수 있게 덮어 내야지
꾸역꾸역 밀어 넣어둔 조각들이 미어 터져 나왔다
아
언제쯤이면 그녀를 뱉어낼 수 있을까
봄에게서 소녀에게
봄 친 라일락 방울새가 별을 빨아
단물 빠진 꽃 풍뎅이가 핥는다
늦은 밤 달빛이 향기를 삼켜
한 푼 이슬에 가지를 다 내어 바쳐도
자존심은 싫다더라
다 벗겨진 살갗 위 동산
몸 찾아 꿈 파는 여인네들
알량한 웃음과 숨을 맞바꿔
그래 그리 산다
사공
하늘을 삼킨 별빛 파도가 뱃바닥 쓸어 훑는다
끝나지 않는 이 장마의 첫 방울이 떨어지던 때 즈음
나룻배 하나 얹어 노를 저었다
천일이고 배를 저어도 뱃삯을 받을 수 없다 하였다
기이한 일이였다
해 뜨면 배를 띄워야지
결이 짖으면 다시 가라앉히고
물 밖으로 주둥이 내밀어 숨 삼키면
다시 여울 위로 배 띄워 올려야지
어른들의 사랑은 낡았어
텅 빈 눈동자에
사월 바람이 갉아먹은 별 한점 반짝
허울적 그래
외진 음지서부터 끌어모아 사랑해
스무 개의 언덕을 넘은 날 바라보는 네가
스무 개의 언덕 뒤에 서서 바라보는 네가
우울한 사랑을 거스르고 내려온
미치광이 별들과 한 잔 부딪혀 쨍
버드늘 살가운 이파리 날려
도스르고 다시 뵌 하늘이 억울해
들찬길 벅차 오른 가슴에 그래 사랑해
눈을 가리고 별을 스무 개까지 셌어
아직 너의 얼굴은 멀었나
붉은 미소
오늘의 마지막 가닥은 생각보다 길어
질척이는 노을에 푹 담근 꽃잎을 세며 널 기다렸어
몇 송이면 너를 살 수 있을까
덜 익은 두 뺨에 불그죽죽한 석양을 칠한 소녀
너를 쫓아 마른 평원을 내달리는 작은 어깨
조금 이른 시간 벌써 잠자리야
새벽에 재워 둔 웃음 말곤 아무 것도 덮지 않았어
낡은 밤에 잠긴 달 위에 칠해진 우리
꽃물 속에 재워 둔 오늘의 끝자락
나의 몸을 허락해 준다면
너의 그 홍조 띈 미소를 떠먹여 주겠니
김주원
이메일: vlxjwpdhkd@naver.com
연락처: 01099014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