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의 생 >
문득 올려다본
콘크리트 벽 천장에 드러난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가엾어라 가엾어라
누가 널 이리 가두었을까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발버둥치고 제 날개를 팔딱거려도
피부에 느껴지는 끈적임은
절망만을 일깨워주듯이
그렇게 얄팍한 숨을
힘겹게 내쉬던
나비는 이내 조용히 날개를 축 내려놓았다
육각형의 견고한 감옥이
주마등 마냥 보여주는 얽매이고 얽매였던 나비의 생
덧없는 생에서 나비가 보았던 것은
창문에 걸린 파란 하늘이 아니었을까
작은 미련도
작은 희망도
모두 다 걸어놓은 채.
<나비의 허상>
네가 물었었지
나는 그날 무슨 생각을 그리 했노라고
혹여나 나를 구해줄 이가 있을까
하고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었다
내 샛노란 날개가 이내 꺾이고
그 생기를 잃어갈 때
비로소 뒤돌아보았다
내가 지나간 자리를
내 삶의 반이
밍그적 밍그적 기어다니고
큰일이라봐야
나뭇잎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다였다면
참으로 별볼일 없는 인생이였겠지
문득올려다본
푸른 하늘은
마치 구름으로 장식되어있는 푸른천장과 같았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동경과 갈망하게 만들었다
난생 처음 바라던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했을 때
나를 싣어주는 바람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싶었다
비록 날개는 꺾였으나
날아오는 나를 반기던 여린꽃들에게는
황금빛 찬란함이었을테니
창가에
바램도 희망도 싣어가라고
모두 걸어두고서
눈을 감는다
< 못생긴 사진>
나는 사진을 참 찍기 싫어했어요
왜냐구요
카메라에 비친 나는
참 못생겼거든요
통통한 얼굴
보기 싫게 톡 튀어나온 덧니
푹 눌러놓은 듯한 납작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어디있겠어요
보기 싫은 내가 잔뜩 있었지요
남들은 예쁘게
요렇게 저렇게 폼을 잡고서
찍어대는데
난 참 못낫대요
하지만 이내 깨달았어요
카메라에 담긴 건
못난게 아니라
쑥스러움이었어요
사진에 배어나온 쑥스러움은
썩 나를 예쁘게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그 날의 풍경
그 날의 우리
그 날의 기분
모두 내 속에 있어요
< 첫 연애>
"난 연애를 안할꺼야!"
라고 열아홉의 나는 말했었다
그건 일종의 작은 규칙이었을까
하지만,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너를 좋아해"
티없이 순진무구한 고백에
어떻게 거절을 했으랴
대답도 전에 홍당무가 된 얼굴이
대신 대답했지
"나도 좋아"라고
둥실둥실 분홍빛 솜사탕처럼
내 기분도 폭신폭신 떠다니네
< 겨울의 사랑방식 >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그를 두팔벌려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란 없다
그저 자비없는 그의 입김에
어떤 털달린 신발도 방패가 되지 못하고
여린 나의 발도 피해가지 못할뿐
마치 심통난 듯이 시뻘겋게 부은
여린 나의 일부분은
그저 씩씩대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다
그런 그는
한동안 매섭다가
소리도 없이
온통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주고는
아닌척 지나갔다
밉다가도 괜히 사람 마음 뭉클해지게 만드는
너의 이름은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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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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