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9차 창작콘테스트 - 공허한 아이 외 4편

by 정혜원 posted Feb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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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허한 아이

 

 

목넘김이 쓰다가 달콤해질 때 쯤 사이에서 문득 그 이름이 테이블 위로 던져졌다.

너도 나도 슬픔을 경매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혀는 짠 맛을 토닥이고 있었다.

 

그 이름이 벽에 부딪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불렀던 때가 있었다.

아니, 가끔 온 감각을 과거에만 집중시키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 이름이 투박하게 굴러 왔고,

예전에는 모났던 그 이름이 발밑으로 닿았을 땐 어느새 상처 하나 없는 원이 되어있었다.

굴러온 그 이름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특이한 염전 속에 담겨 코팅된 그 이름.

햇볕이 빛은 생명이 꽃이라기엔 너무 동그랗지 않은가.

 

맛도 짭짜름하고 염전에서 태어난 너는 왜 동그란지.

다시 모나게 빚어야 생명이라는 명제의 역이라도 도달하려나.

근데 예전부터 만두 빚는 솜씨는 젬병이었는데 말이지.

 

 

 

 

 

<2>

낚시꾼 없는 낚시터

 

 

옆구리를 저미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보니

웬 낚시꾼이 제 안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갔네요

이런 물고기 한 마리 없는 곳에서 낚시를 하시다니요

그렇게 낚싯대를 드리우시면 제가 버티기 힘든걸요

그래도 당신의 낚싯대가 떨어지지 않게 수많은 바퀴들 속에서 버텨야겠지요

 

낚싯줄 끝에 무엇이 걸릴지 보고있다보니

아, 다른 낚시꾼이 또 낚싯대를 드리우고 갔네요

여긴 명당자리가 아닌데 왜 자꾸 찾아오시나요

하나둘 낚시꾼들이 더 찾아오네요. 도대체 무슨 이유이신가요

몸을 좀 더 웅크리고 있어도

매정하게 절 짓밟는 바퀴들 속에서 당신들의 낚싯대를 지키기가 너무나도 힘든걸요

 

입질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절 믿고 가시니 달게 기다리겠습니다

무겁고 녹슨 몸을 가지고, 가장 낮은 자세로, 작은 구멍으로 당신들이 찾아오나 살피면서,

 

아, 아마 제가 땅으로 꺼지는 날이 오면 그제야 낚싯대를 찾아가시겠지요

 

 

   

 

<3>

누군가를 위한 잠

 

 

투명하지 않은 수조 속에 물고기가 된다는 것

그 뜨거운 물속에서 익어가지 않고 날숨을 한다는 것

동그란 공기 방울이 코 안으로 맺히는 것만 아니라면 깊은 잠을 잘텐데

 

스스로 내뱉는 소음이 싫어

고통 없이 잠겨드는 죽음을 그렸고

그렇게 난잡한 날숨을 계속하다보면

나중엔 얌전한 소음을 깨우칠지.

 


 

 

<4>

옆집 소의 취향

 

 

1.

옆집 소의 취향은 특이했다. 그만한 덩치에 힘을 가졌으면서도 다 늙고 허리도 구부러진 제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빠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빠는 대답했다. 반대인 사람끼리 끌리는 것이라고. 그렇구나 하고 소를 보았다. 아, 소는 사람이 아니었지. 그래서 소에게 물어보았다. 소야, 소야. 너는 왜 할아버지를 사랑하니. 옆집 소는 콩알 같은 눈만 끔뻑이며 혀로 코를 핥았다. 음-메 하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자신의 무릎을 두드렸다. 옆집 소의 취향은 참 특이하다.

 

2.

옆집 소는 산책을 나갈 때도, 일을 하러 나갈 때도, 우물거리면서 건초를 먹을 때도,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가끔씩 음-메 하고 울기도 했다. 특히 건너편 강아지가 할아버지에게 뛰어가 놀아달라고 할아버지의 발목을 물어댈 때면, 목에 걸린 종까지 달랑이며 크게 울어댔다.

그에 비해 할아버지는 산책을 나갈 때도 옆집 소보다 뒤쳐졌고, 일을 하러 나갈 때도 금세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밥을 먹을 때도 제대로 씹지 못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마루에 누워 옆집 소에게까지 들리게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럴 때면, 옆집 소는 마구간에 같이 누워 같이 울었다. 아이고, 음-메. 아이고, 음-메.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집은 항상 문을 꼭꼭 닫아놓곤 했다. 참 특이한 취향.

 

3.

할아버지가 특이한 옆집 소의 취향 때문인지 옆집 소를 배신했다. 이상하게 할아버지는 옆집 소를 배신하면서도 바보같이 울어댔다. 옆집 소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눈망울을 반짝였다. 트럭에 타면서도 옆집 소는 끝까지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아이고, 아이고, 미안하다 미안해. 할아버지는 또 앓는 소리를 냈다. 옆집 소의 취향은 끝까지 특이했다. 자신을 버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음-메 하고 소리를 맞추었다. 이상하다. 시끄러운 시동 소리가 둘의 울음소리를 지워버렸다. 음-메, 아이고. 음-메, 아이고. 할아버지도 옆집 소의 특이한 취향에 닮아간다. 할아버지는 옆집 소를 버리면서 울었고, 옆집 소는 늙어 빠진 할아버지와 헤어지면서 울었다. 음-메, 아이고. 아이고, 음-메. 그날은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다.

     

 

 

<5>

그날의 메아리

 

 

비틀거리는 고요 속에는

항상 둔탁함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망상에 젖어 눈코입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도 둔탁함이 찾아왔다

오른쪽으로 툭,

왼쪽으로 툭,

 

모두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발버둥으로 작은 우물 옆에 자리를 잡지만

이번엔 엉덩이가 젖어간다.

마지막 발악에도 엉덩이는 비틀거리는 둔탁함에 져버리고 만다.

어릴 적 이불에 쉬 하던 버릇은 이미 없애버린지 오래인데.

 

우물 속에 메아리를 만들고,

엉덩이의 지도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도중 생각한다.

내가 망상을 했던가. 상상을 했던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쯤 둔탁함을 정리하면서 작은 우물에 물었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메아리는 퉁명스럽고 거칠었다.

네 엉덩이는 아직 마르지 않았는걸.




정혜원 (jhw0030@naver.com  / 010-7330-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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