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에게 외 4편

by 새벽물병 posted Feb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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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게

 

 

굳은살이 박인 오른손은

오늘도 묵묵히 움직인다.

상처투성이인 오른손은

오늘도 바삐 움직인다.

 

 

오른손이 지칠 때

왼손은 대신 일한다.

서툴고 어설픈 솜씨에

오른손은 됐다며 일한다.

 

 

왼손은 멍하다

나도 손인데

나도 손인데

 

 

저릿저릿한 오른손은

또 다시 묵묵히 일한다.

힘이 빠진 오른손은

또 다시 바삐 일한다.

 

멍하던 왼손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잡는다.

멍하던 왼손은

오른 손목을 살포시 잡는다.

 

미안하다 말한다.

됐다고 말한다.

미안하다 되뇐다.

됐다고 토닥인다.

 

 

 

 

 

 

 

가나다라 (부제: 임을 보내는 시간)

                                    

 

가버린다는 말도 없이

나를 떠난 임이여

다시 온다는 말도 없이

라일락 향기만을 남긴 임이여

 

 

마지막으로 본 것이 당신의 뒷모습이니

바보같이 바라만 본 것이 내 모습이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아직까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습니다.

 

 

자그마한 손이 임을 잡지 못했고

차가운 임을 이제야 잡은 손은

카알에 베인 것 마냥 아려오고

타오르는 한과 올라오는 악을 다시 삼키며

파란 강 건너 가버린 임과 내가 있던

하늘로 사랑해라 흩날립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그대를 바라봅니다.

그대 역시 가만히 서 있습니다.

 

 

행여나 내가 움직이면

그대 역시 움직일까봐

 

 

행여나 내가 다가가면

그대는 멀어질까봐

 

 

더 이상의 거리를 좁히기 싫어

나는 비겁하게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그대를 바라봅니다.

 

 

 

 

 

 

 

 

 

 

 

 

 

 

반짝이는 별이 떨어질 때

                         

검은 우주 같은 눈동자에서

푸른 별똥별 같은 눈물이 떨어질 때

그대 역시 떨어지고 만다.

 

 

그대는 별이 되어

내게 떨어지라

그대는 떨어져서

내게 다가오라

 

 

푸른 별 같은 그대에게

검은 우주 같은 그댈 품을 내가 있기에

그대가 내게 다가오길 빈다.

 

 

 

 

 

 

 

 

 

 

 

 

 

 

 

 

 

 

 

 

 

 

 

 

 

당신에게 가는 도로 위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들려오는 소리

그대와 함께 듣던 노래이니

 

 

차에 내려 서 있는 길에서

비포장 된 모래먼지 날리는 오솔길

그대와 함께 밟던 모래자갈이니

 

 

흩날리는 모래먼지 속에서

눈에 들어온 담장의 지저분한 자국

그대와 함께 새긴 낙서이니

 

 

담장을 넘어 들어선 집에서

작아진 책상위에 먼지 쌓인 공책

그대와 함께 적은 일기장이니

 

 

그대를 그리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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