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을 꺾는다고 누가 슬퍼하랴
시든 꽃을 꺾는다고 누가 슬퍼하랴
메마른 향기에 벌초자 발길을 끊은 지 오래 아니던가
메마른 꽃잎에 부끄러운 사랑을 품은 것도 오래 아니던가
메마른 잎사귀에 눈물조차 앉지 못한게 오래 아니던가
시든 꽃을 꺾는다고 그 누가 슬퍼하랴.
망부석
오는 길 헤아리지 않고 떠난 님 기다렸나
고왔던 자태 그대로 굳어버렸구나
떠난 님 다시 돌아온들
굳은 몸에 님 안을 수 있으랴
맑았던 눈엔 눈물마저 흐를 리 없으리.
바람편지
굽이치는 파도에 바다를 거슬러 오르랴
잡초마저 시들은 땅을 발로 딛으랴
새마저 떠난 하늘에 날개를 바라랴
쉬이 닿지 못할 그곳엔 바람만이 자유롭네
쉬이 바다를 거스르고
쉬이 땅을 딛으며
쉬이 하늘을 휘젓네
찢어진 살갗처럼 아픈 이별에
안부조차 쉽게 묻지 못했는데
찢어진 이별엔 새살도 돋지 못했는데
쉬이 가는 바람에 내 안부를 담아야지
쉬이 오는 바람엔 임의 안부가 담겨있어야지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프지 않길 바라오.
난 잘 지내고 있다오.'
안부 담아 날린 바람은 쉬이도 날아가네
혹여나 임의 안부 담긴 바람 놓칠세라
오는 바람 일일이 맞이하며 서있어야지.
해로
고왔던 얼굴엔 옛 모습 찾을 수 없구려
희고 보드라웠던 작은 손은 세월에 덮여버렸구려
어렴풋하게 남은 사랑자욱엔
고생만 시킨 못난 나만이 남아있구려
흐른 세월에 아름답게 여무는 것이 사랑인데
어찌 그리 슬퍼하시는지
세월의 흔적에 부끄럽게 덮인 그곳엔
순수하기만 했던 당신만이 남아있는데
긴 세월 잡아준 손에 참 고맙구려
이제 나 먼 길 가려하니
맞잡은 손 먼저 놓아주오
외롭고 메마른 길에 당신 무서울라
나 먼저가 천천히 당신 맞이하려하오
긴 세월 잡은 손 어찌 쉽게 놓을지
거칠은 볼엔 주름진 눈물자욱만 남았네
당신 없는 이곳이 더 무서울라
먼저 간 길에 천천히 걸으시길
나 얼른가 당신 손 다시 잡을 것이니.
어떠한 詩
짜낸 글자로 이어진 나의 시에는 아주 조그만 감정조차 스며들지 않았다
느리게 이어진 글자들엔 담배내음조차 배질 않았다
누군가의 시에는 뒤엉킨 고뇌가 있는데... ...
누군가의 시에는 고통스러운 사랑이 담겨있는데... ...
누군가의 시에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있는데... ...
작은 것에 괴로워할 줄 모르는 나는 그 어떤 것의 흉내인가.
김 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