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콘테스트

by 호랑이 posted Feb 07,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 숟가락

무료 급식소에 줄을 선다

숟가락 하나

이빨 빠진 입안

입술 속 가득한 밥알들

찢어진 배추김치

구역으로 분리된 식 판 안으로

경계가 허물어진다

경계 너머 쌓이는 생존들

살아야 한다

한결 같은 자세

모두 살아야 한다는 자세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산다는 것을 지탱하는

그 한 숟가락

슬프지만

산다는 것은 한 숟가락

딱 그만큼의 무게다

 

 

늙은 아버지의 바다

한 시절, 바다의 푸른 맥박을 건져 올리셨던 아버지는

용두산 공원에서 비둘기를 본다, 늙으신 아버지는

세어본다, 이제는 서투른 눈짓

바다를 배회하던 물고기의 숨소리를 세듯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다시 하나 둘 셋

몇 걸음의 범위에서 멈춰진 시선, 바다처럼 뻗어나지 못한다

다시 한번 더, 잘못된 겨냥 또 다시 한참을

곁에 두고도 바다로 나서지 못하며 숲이 내어 던진 그림자만큼의 간격 속

팔각정 아래, 시간만큼 축 늘어진 벤치 위 아버지

넘쳐나며 허망한 시선들

낯선 지붕들 사이로 물결이 출렁인다

남회귀선을 향해 멀게 펼쳐진 바다

너희들의 바다, 가지 못하는 바다

잃어버린 바다 애써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어제처럼 오늘

또 다시 공원의 내일

어둠이 내리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바다를 비켜선 비탈을 내려오며

무거운 걸음

어제처럼 오늘 또 다시 공원의 내일처럼

하나 둘 셋

뱃머리에 부서지는 파도를 세듯 계단을 세며 내려온다

늙은 아버지는

오늘 하루를 또 그렇게 보내셨다

아버지는 잠 속, 이제서야 바다에 선다

한때 갈매기처럼 날아다니던 푸른 물결의 꿈을 꾼다

바다를 태우며 일어서는 태양의 깃발을 본다

흔들리며 출렁이는 무덤, 세상의 자유를 본다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그 섬

우리는 모르고 산다

가슴에 하나씩 품고 사는 그것이 섬인 줄

사람이 하나씩 떠나가던 때

나보다 먼저 일어서고

나보다 먼저 쓰러지는 그것이

벌판보다 더 먼 햇살만 가득 찬 그것이

우리는 무엇인지 모르며 견디고 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이제 그만 나를 떠나간 사람을 잊으려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누군가가 이미 지워지지 않는 섬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며 산다

눈 내리는 거리에서

머리에 이마에 쌓이는 눈을 품어내다

아련히 생각나는 그것이

가슴에서 키워온 섬이란 걸 모르고 산다

우리 모두는 섬을 가슴에 하나씩 품고 산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지만

지금은 버림받아

눈 내리는 골목길의 전봇대처럼 고독할 때

가만히 흔들리는 그리움

첫사랑의 기억이 파도소리로 들린다

그 섬에서는

 

 

 

 

손금

 

다섯 손가락을 편다

지나보니 낙엽만 가득한 손바닥

바람이 불고, 뼈마디를 감싸는 황톳길 마디 마디 무성한 잡초

손바닥 속 길은 빗속에서 끊어져 있기도 했고

견디다 견디다 넘어진 이정표 팻말들

너와 나,

우리 헤어진 까닭이 저 너머의 길이 없었음인지

다가서지 못하는 운명, 어디선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가슴에서 흘러내린 사랑이 손바닥 끝에 다다르지 못한 일체의 이야기

몇 발자국 앞, 세상 너머 어둠만 찼다

잃어버린 만큼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니 재물이니 제 스스로의 이름, 나는 이제 피곤하다.

우울한 선장의 길고 먼 항해

서성거리는 항로, 보이지는 않아도 갈 길이 멀다

이미 정해져 버린 세상일지도 모를 손바닥에 피어난 꽃

손바닥에서 강과 강이 목 쉰 울음처럼 고요를 흔들어 깨운다

손바닥 그 속, 그늘 가득한 바람의 격한 몸부림

길게 뻗어나지 못한 외로운 분계선

우리 사랑하지 못한 이유

너에게 가는 길. 없음. 내 탓

다시 서럽게 손금을 본다.


Articles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