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밤 열한시의 귀가에는
조그만 빛 한 점이 필요했다
뻥 뚫린 직선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수액줄처럼
구불대는 속을 붙잡고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명치 끝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몾젖 바로 앞까지
누워있는 그녀의
다 빠진 머리카락이 올라왔다
끝내
삼키지 못하고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빛 한 점은
현관에 머물렀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잠을 청했다
아주 잠깐
온전한 내 세상이었다
자아
병들어 잠든 어미의
몇 안되는
흐트러진 머리칼에서
먼 과거의 욕망,
휘어진 사탕가락을 떠올리는
네가
누구이기를
바라느냐
십이월 이십사일
동백이 또 피었다
황홀에 젖어
스물 세 번의 동백을 보는 내내
왜 단 한 번도
가지를 꺾지 못했을까
발길에 채며
굴러다니는
오동잎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두꺼운 전공 책 새에
바스라져 썩어가는 오동잎이 끼였다
내 방에는 세 권의 전공책과
아홉 개의 볼펜과
초점 없는 눈알이 굴러다녔다
오동잎은 병원의 쓰레기통에
동백의 가지는 꺾어버렸다
내 방으로 돌아갈 길에는
어떤 것도 피어있지 못하게
투영(投影)
아이는 돌을 던졌다.
물수제비, 물수제비,
수 십 번 일러도 아이는
돌을 던질 줄밖에는 몰랐다.
엄마는 ̄
땟자국 조각 깊은 눈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초롱함의 파편이 가슴에 박혔다.
갈라진 물음을 흩뜨리고
옆에 앉았다.
엄마는, 곧 사라져요 ̄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거든 오너라 ̄
온기 대신 너덧 장 지폐를 쥐여 주고
아이는 초점 너머로 사라진다.
눈을 감고 별을 봤다.
빛이 지지 않는 밤이었다.
번들
내로라하는 큰병원 교수는
청진기를 달고 다니지 않았다
헐렁한 가운은 펄럭이는 법이 없었고
높게 솟은 콧등에 걸친 안경 한 번
내려가는 일 없었다
체구가 다부졌고
숱많은 눈썹이 유독 짙게 도드라졌다
차트로 내리깐 속눈썹이 길었고
아랫입술이 유독 두꺼웠다
마지막
빼먹은 하나,
목소리가 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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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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