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분 - 「떡국」 외 4편

by 리코더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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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아차 졸았던 아이의 눈썹에 흰 빛이 들었다 꼭 흰 눈 같아

집 밖에 눈 위를 뒹구는 흰 개가 있다 뒹굴수록 투명해지는

아이는 개가 싫었다 저기 흘러가버리는 물도 싫고


꼭 내 눈썹 같아

노인의 그것을 본 아이의 몸이 간지러워졌다

나 좀 데려가줘요!

부엌에 들어가고 싶어서 눈 위를 뒹구는 아이가 있다


나 좀 데려가줘요!

하루 묵은 떡국처럼 늘어지는 말이 흘러 간다

투명하게 오가는 눈빛들 사이에서 조용히 떡국을 먹는다



계주


선이 비뚤어져 있었다

선 밖에서

쪼그려 앉아 모래를 쓰다듬는 중

손에 땀이 많은 너는 꼭 떨어뜨린

손바닥 사탕 같다 손바닥 대신 발바닥이 빨갰지만


떠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린 착한 역할들에 충실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떠들지 않았었다면......


아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그 곳엔

선생님 없이 오직 말씀만 있었고


부푼 꿈을 가지고 자라는 학생들에게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손바닥에 주름이 너무 많아서 울지를 못한대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선이 비뚤어졌다

너무 오래 쪼그려 앉은 탓에


아, 마지막으로


비뚤어진 선에서

떠든 사람 대신

울지 못하는 모래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침입


사람은 누워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누운 자세로

서 있기도 했다 노크 소리는 몽롱하게 울렸다 고막을 두드리듯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동시에 문을 잡아당긴다

이거 왜 안 열려 안에 누구 없습니까


자꾸만 발목이 빠져나간다

발목은 참 움켜쥐기 알맞게 보인다 하얗고 가늘고 마치 소녀의 목 같은

감고 있는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눈꺼풀은 구속이 심했던 애인을 닮았군

저를 구해주세요

글쎄, 눈이 이쁘다라는건 대게 눈꺼풀이 이뻐서 일텐데


그래도 괜찮겠니?


자꾸만 오줌이 마렵고 화장실은 갔다 온 사람은 나 였을지도 모른다

물 내려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여전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옆집에 사는 젖가슴은 우는소리도 내 보고

창 밖의 사람들이 속삭인다


너희 집은 원래부터 열려있었어



스토킹


뒷모습이 좋아지면 무작정 따라 걸었다

눈을 잠시 감으면

좁은 기차선로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뒷모습과 키스하고 싶어지는 사람

나는 뒷모습이라고 부를 것이다

뒷모습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나 할지

인사를 건넬 때면 나도 뒷모습을 보여야 할지

뒷모습, 이제 자신의 목선처럼 희끗거리게 걸어가고


뒷모습엔 왜 흑백사진이 어울리는지

뒷모습을 보면 왜 멈추어 안고 싶어지는지

뒷모습엔 묻어나오는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이제 선로는 무너지고

뒷모습을 놓아 버린 채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으면


아직까지

경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는 길이다



이중주



한 대의 자전거와 한 명의 여자가

내리막을 걷는다

느리게 걷는 여자는 자전거보다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페달을 좀 더 밟아 봐!

그러나 페달은 구름처럼 떠 있기만 할 뿐

자전거는 여전히 느렸다


그때 네가 자전거에 올라탔다

자전거 거치대 위에 피아노를 올려 두고서 자전거 안장에 거꾸로 앉았다


너는 주머니 속에서 악보를 꺼내고

페달을 밟고

피아노는 작동하고

자전거는 내리막을 연주했다


너는 허공에서 구름을 밟는다 손은 빠르게 미끄러진다

자전거를 앞지른 여자는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자전거를 듣지 못하고


사람 두 명을 치고 나서야 연주가 끝났다 곧이어 들리는 여자의 박수 소리  


윤석빈/ nyoongoon@naver.com / 010-5527-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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