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갯잇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머릿속에 숨어있던 그대와의 추억들이
밤마다 하나하나 떨어져 나와서 베개사이로 들어갔는지
어느새 파란 빛을 품어내는
잎사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겨울동안 잠자던 씨앗들은 기다리던 봄비를 맞으며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타며 팔을 흔들어 대지만
내 텃밭에는 아직 추운 겨울이 물러가지 않았는지
싹을 틔운 잎새들은 더 이상 자라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초록 빛을 내며
처음 만난 세상에 인사를 건내는걸 모르는지
베개에 심어져 있는 새싹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지
바람에 맞아 날아가버릴까 걱정이되
고개를 빼들지 못하는건지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만 서있습니다
밤마다 그대를 생각하며 내가 흘리는 눈물을
먹어치우는 잎사귀들은
왜 동화속에 나오는 콩나무처럼
하늘 높이 자라나지 못해
그대에게 나를 데려다주지 못하는지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먹고나서
내 소원을 들어주려는지
한결같은 모습의 텃밭을 원망하며
오늘도 긴긴밤을 지새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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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수마을에서의 삶
많은 사람들은 고여있는 물 안에서 태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물결을 따라 살아가는 물고기들을 보며
바보 같다며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느 것을 보며 손가락질 하겠지만
그 모습을 본받아야하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다른 동물들보다 짧은 삶이지만
다투지 않고 유유자적 헤엄을 치며 살아가다
이따금 물 밖 세상이 궁금한지 고개를 내밀어보지만
자신의 호기심을 삼키고 뒤로 돌아
다시 물 속에 있는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갑니다
감자기 잔잔하던 호수거울 뒤로 파문이 일면
마음소에 가득 모아두었던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면 위로 향해 물을 튀겨가 힘차게 꼬리 짓을 하지만
먹이와 함께 자신의 욕심을 삼켜버리고선
주변 친구들에게 입을 뻐금거리며 사과의 말을 건내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유유히 물살에 맞춰 헤엄쳐 갑니다
호수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적들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싶겠지만
호수의 크기에 자신의 몸집을 맞춰가며
위험하지만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코이의 마음가짐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묻고 싶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모두 버리고 주변을 생각하며 살다보면
남들은 미련하다고 말하겠지만
자그마한 호수 마을에 평화를 지켜가는
그들만의 방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남들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큰 세상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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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벽을 쌓는 이유
내 마음의 벽을 쌓아서 가슴속에 땜을 만들어 갑니다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지워버릴 수 있지만
마음 안에 있는 추억들은 지워지지 않아
맘속 깊이 묻어 버립니다
혹여나 추억이 내 마음을 헤집어서 괴롭게 할까
행복해 보이는 과거의 내 모습이
지금은 너무나 무서워서
나오지 못하게 땅 속 깊이 묻어두겠습니다
나의 감정이 마음속을 흘러다니다
땅을 파해쳐 묻어둔 추억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게 될까 두려워
마음에 벽으로 땜을 쌓아
감정들을 한 곳에 모아 가두겠습니다
감정이 없는 마음이 말라 갈라지고 단단해져서
그대와의 추억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라버린 강바닥 밑에
묻어둔 추억들을 다시 보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고 안에 묻혀있어
그대를 다시 만난 날 땜 허물고
추억들이 다시 나의 감정들에 녹아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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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상처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깊어집니다
어릴 때부터 밥을 먹이려고 혼을 내고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누구보다 먼저 잠을 청하고
만나면 버선발로 나와 껴안으며
이마를 맞대던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대학을 가면 꼭 같이 살자고
나에게 새끼손가락을 걸던 사람이 있습니다
전화를 걸고
“나다.”라고 말을 해서 주변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내 주위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흔적이 있기에
웃으며 전화를 받습니다
지금은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나다.”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아버려서
지금은 그대가 내 곁에 없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입으로 내뱉습니다
오늘밤에도
세월의 상처가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볼 때
한편에 항상 서있던
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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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매일 밤 나의 머릿속에서
잠과 생각들이 다투고 있습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침묵의
가로등 불만이 반짝이는
새벽이라는 시간에
저는 그대를 떠올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오직 그대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대는 잠들었는지
연락이 오지 않지만
혹시 몰라서 핸드폰을 확인해보고
다시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면서
깊어지는 밤을 세고 있습니다
내가 잠을 자지 못하고
그대를 떠올리는 것처럼
꿈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마음속으로
그대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잊혀지지 않는 얼굴을 어두운 천장에 그려보고
잠시 뒤 떠오를 해와 같이
그대도 떠오를 수 있도록
어둠속에 그대가 없는 시간에도
나의 마음속에 그대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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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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