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연습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연습
눈물은 옮는다고 했나
혹여 옮을까 눈물조차 넣어둔 채
그냥 이별도 아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멍하니 바라본 까만 하늘.
날씨는 좋아
구름 한 점 없어도
거울이 깨져도 얼굴은 비치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흘러가는 시계 초침을 보며
한낱 그리움,
한낱 기억을
더는 참아낼 수 없어
있는 대로 토해낸 다음
또다시 반복되는 잊는 연습
보고픔을 참는 연습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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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잠결에 들리는, 조심스럽게 문 닫히는 소리
머릿속에 그려보는 집을 나가는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
아빠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곁에서 발을 맞춰 걸으며
한숨 섞인 새벽의 하품과
아무에게도 말 못할 혼잣말을 들어줄 수 있다면
밤인데도 선명한, 아빠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
아침보다 짙어진 그늘을 보며 생각해본 나태했던 나의 하루
아빠의 빛이 되어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나
그의 밤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아빠 얼굴의 그늘도 없애줄 수 있다면
아빠의 미래가 되어
걱정이 아닌 기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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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나름 잘해왔다 생각해온 여태
컴퓨터 자판처럼 두드리면 입력되었던,
내일만을 준비해온 하루가
회의를 품은 게으름에,
한 순간에 그저 그래져 뒷걸음질 쳐버리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던 품이
눈 앞에 있지만 찾을 수 없네.
손을 뻗어 잡으려고만 하던 그것이
실체를 잃고 사라지는 순간,
뛰던 내 두 다리는 힘이 풀려 주저앉고
내 두 눈은 초점을 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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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없는 하루
혹여라도 학교 가는 905번 버스를 놓칠까
나오기 전 집어 든 막대사탕 하나
늦잠의 대가는 4교시의 배고픔이요
막대사탕은 지난밤 숙제의 작은 너그러움이다
정신 옆에 두고 온 손목시계와
그로 인해 얻은 왼쪽 팔의 가벼움
그 무게감 또한 허전하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
시계 없이도 알아서 오는 버스와
시계 없이도 불안하지 않은 시험
다급해질수록
마음 한 켠에 퍼지는 여유로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살아온 지난날이
한순간 허무해지는 시계 없는 하루이니
그 여유로움 속에서
유연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꿈만 같다
비록 내일은 다시 내 왼쪽 팔이 무겁겠지만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며,
오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그 우연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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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잠들기 전에
적막한 새벽, 불 꺼진 거실에 누워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 고요한 마음에도 떨림이 있어
애써 잠재워보려 숨을 들이마셔본다.
들리는 것은 오직 내 숨소리뿐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미세한 떨림조차 요란해서
더 큰 숨을 들이마시며 떨림을 달래본다.
눈을 감지 않아도 충분히 검은 천장에
나는 내 고민을 하나 둘 그려보며
덧없는 것, 덧없는 것 하고 중얼거려본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미세한 떨림에
나는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뜨지만
달라질 것 없는 천장의 그림은 오히려 나를 내려다보듯이
점점 나를 조여오고
어느새 코 끝에 닿은 천장이 나의 눈을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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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주
010-6349-4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