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내 취향이었어.
희고, 곱고, 귀여운 예쁜이.
밤마다 안고 싶었고,
너와 잠들고 싶었어.
너는 내게로 와
품에 예쁘게 안겨
그날 나는 최고로 행복했었어.
행복했었어.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여느때와 같이 침대에 앉아있던 너
그 옆에 늘어지게 누웠지만
기쁘지도 않고,
행복치도 않아.
희고, 곱고, 귀여운 예쁜이는
노랗게, 체취가 묻어
옆에 두고 싶지 않았어.
그래, 이건 옳지 못하다며
낡은 쓰레기통에 인형을 처박고
더 큰 인형을 찾아.
그래, 이게 최선이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
너와 내가 함께 나아갈때는
발 맞추는게 중요하단다
네가 어떤 금이건
내가 어떤 흙이건
본질은 잠시 접어두고
발 맞추는게 중요하단다
네 아버지가 일류 선글라스였고
내 어머니가 삼류 돋보기였대도
너와 나 함께하는 지금
발 맞추는게 중요하단다
자랑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고
숨기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는
너와 내가 지금 함께하니
발 맞추는게 중요하단다
뽑기
동전을 두 개 넣고 돌리면
데구르르 굴러나오는 캡슐
누구한테 갈지도 모르고
어떤 게 올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는게 나와도
동전 두 개 값이면 싼 편이지
버리면 그만이야, 하고
생각 없이 돌리는 뽑기 손잡이
노인의 삶
누가 나를 낡았다 하느냐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것은
목공 손에 들린 망치처럼
아이 손에 닿은 피아노처럼
아직도 많이
많이 남았단 말이다
누가 나를 힘없다 했느냐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것은
저 새가 나는 것처럼
저 선풍기가 도는 것처럼
여전히 힘차게
힘차게 해낼거란 말이다
누가 나를 늙었다 하느냐
나이들고 병들어도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누워 그 날을 기다리는게 아닌
당장 일어나 너를 껴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청춘
졸업식에 받은 장미꽃 한 송이
순수하게 피어 내 손에 들렸다
한나절 뜨겁게 품어지던 장미꽃은
졸업식이 끝나자 유리병에 꽂혀
며칠을 며칠을 말라가며 버텼더라
졸업식에 받은 장미꽃 한 송이
마르고 잊혀져 묵묵하던 꽃은
그 안의 어여쁜 속잎들을
며칠을 며칠을 정성스레 가꿨더라
아름답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혼신의 힘을 다해 피워내더라
장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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