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이 열리면
앞서 탄 선배들이
말 없이 맞이해준다
문이 닫히고
닭장 속 닭처럼
어딘가로 실려간다
어디로 가십니까
속으로 물어보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문이 열린다
후배들이 전철에 실린다
말 없이 맞이해준다
문이 닫히고
상자 속 병아리떼처럼
어디로 실려가는 걸까
어디로 가십니까
누군가 물어보지만
할 말이 없다
해줄 말이 없다
그저 돌고 도는 열차처럼
내일도 이 자리일테니
주머니
주머니 속 동전 석 냥
한 닢으로 라면을 사서
하루를 달래고
다른 한 닢으로는 담배를 사서
하루를 견디네
주머니 속 홀로 남은 동전 한 닢
꽃을 사네
옷 안 속에 고이고이 품네
주머니가 비었네
내일은 무엇을 살까
꽃 잎
기나긴 잉태의 시간이 끝나고
같은 날 모두가 얼굴을 내밀었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바람에 함께 춤을 추고
비 내리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막내 꽃 잎 아이 시름시름
바람에 떨어지던 날
작은 꽃 잎 따라서
하나, 둘 씩 바닥에 소복히 쌓인다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일은 없었네
몽아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고
고개를 쳐박고 있으면
어김없이 한 아이가 나타난다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나이가 몇이니
귀찮아 질때 쯤이면
아이는 등을 돌려 멀어져 간다
내가 말을 건넨다
어디로 가니
이름은 뭐니
왜 왔니 내 유일한 벗이여
자전거
남이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쓸모 없는 녀석
그래도 네놈이 부럽다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는
아무도 없는 쓸모 없는 녀석
그래서 네놈이 부럽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을 바라는
너와 같은 사람들 밖에 없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