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의 소녀
발끝을 보면
낭떠러지가 보인다고 했다.
고개를 치켜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
오로라 가득한 눈밭이 있겠지
내 마음은 참 소박하여
그저 들꽃 몇 송이 바람에 휘청이고
쪼르르 무리 지어 나는 참새 서너 마리
눈 부신 햇살.
그것으로 배부르다
머얼리 보면 흐릿한 꿈속
작은 땅이 있을 텐데
그런데도 발끝.
차가운 벼랑이
한 꺼풀 안개를 더한다
空
당신의 빈말이 내 마음을 베어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늘 마주하는 나무의 흔들림에도
아픔을 느낀다
당신의 빈 눈빛에서
날 받아주지 않던 세상의 벽보다
더 캄캄함을 느낀다
텅 빈 방에서 텅 빈 노트에
공기마저 없는 듯
쉬이 들어오지 않는 숨을
애써 들이쉬고 내쉬면서
텅 빈 마음을
'슬프다.'라고 쓴다
멈춤
어쩐지 시끄러운 세계가 싫어
귀를 틀어막아
적막 속 그 고요 안의
또 다른 소음을 반긴다
웽- 파고드는 그 소리에
눈물이 왈칵 밀려들었다
고요한 듯 가만가만하던
깊은 곳 일렁이는
많은 말이 아프다
지금은
이 소리에 잠겨 있자
너와 나를 위로한다
始作(시작)
그어놓은 선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때
그 낯선 장면보다,
계곡의 끝 작은 여울처럼
철썩철썩 마음을 치는
인생의 아림보다,
더 낯설고 아린
내일이 온다는 것.
멀리 다가오는 큰 바람에
두려운 마음이 앞서면
후- 하고 불어온 따뜻한 그 바람이
우리 마주보게 한 것처럼
그렇게 단단해질 거라 다짐하자
오래도록 파란 하늘이
어느새 아름다운 노을 되어
온 언덕에 온기를 비추듯이
그때 서로에게 짙은 따뜻함으로
소리 없는 안아줌으로
그렇게
그렇게 물들자
거미
버스 창에 작은 거미가 달려있다.
빗방울도 거미에겐
제법 세다.
_공모자
홍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