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차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 시(詩) 외 4편

by Paralysis posted Apr 19,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詩)

마른 잎들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
마을 아랫길 강변에 갈댓닢 나부끼는 소리
세상이 눈을 떠 살아있음을 뽐내는
대낮의 생기위에 내려쌓인 고요
막 자리를 떠난
구겨진 방석이 머금은 사랑하는 이의 온기
마당의 햇살을 받아 투명히 빛을 내는
어린 아이의 엷은 머릿칼
그리고 저 너머에 생명을 전하러 떠나는
석양이 물들인 붉은 하늘의 진한 향기
사선으로 번지는 실빛 사이로 떠오르는
먼지마저 꽃이 되는 오후
보고 있자면 저무는 태양이 내 가슴에 들어와
아름다운 순간이 되어
생명이 되어
끝내 나의 삶은 시가 되어 나는
시가 아닌 현실을 살아본다.


미련

명백한 타살이다
길을 잃어 뒤쳐진 꽃에도
나비가 내려 앉는데,
정, 추억, 연민 모조리 꽃잎으로 다
떨구어 보내고
이제는 그저 한 잎,
미련으로 버텨남은
마지막 꽃잎을
존재한다는 것 밖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내칠수는,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꽃이 비로 내릴 때
죽을 수 있었다면...
모든 연정을 불태우고
아쉬움 없는 완연한 모습으로
사랑이 흩어질 때
나는 죽었어야 했다
벅차오르는 순간의 열병을
아름다움의 권태에 시들어가는 아픔을 견디어 냈건만
어느새 차가운 바람은, 아...
혼자서도 이별할 수 있는가.


자화상

내 삶의 별이
세상의 기대, 그 궤도를 타고 흐를 때
내면의 이성과 감성이 필사(必死)로 충돌하여
두꺼운 낯으로 나의 길을 간다면
그리하여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면,
스치듯 지나는 길가의 철쭉과
흑백 기억이 된 어머니의 뒷모습,
취한 듯 어지러운
분홍 벚꽃놀이같은 그대 눈동자를
시인의 언어로 색칠하리
내 삶의 별은
소멸 후에도 영원을 향해 빛나리

허나 내겐, 여명의 적막을 깨고
잠에 취한 사람들 아랑곳 않은 채
마음껏 지저귀는 저 참새만한 용기도 없다
무채색 일상 속에서 나는
열병을 앓고 피어나는 꽃의 절정을 놓치고
당신의 삶을 잊으신 어머니께 드릴 전화를 잊고,
꽃잎같은 그대 눈을 젖게 할 뿐...
주어진 길 위에 내 목소리란 돌을 던지기엔
파동이 두려운, 겁이 많은 나는
타인의 시선이 그린 초상화일 뿐

이제 걸어나오리
그들의 기대로 채색된 초상화에서.
여러 위험과 현실의 무게로 덮이고 덮여
쌓인 정적을 단번에 깨부수지 못한다면
매 순간을 붙잡고,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모아
세상과 내 시선을 맞추면
내 안의 충돌이 세상을 뒤흔들 폭발은 아니라도
별이 되지 못해도,
사는 동안 내가 나를 그리리.


가을

꽃이 내린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휘파람
나뭇잎 사이를 지나
꽃들은 찬란히 부서진다
바람에 흔들리던 무성한 그 모습
물결같이 춤추던 잎들은
듬성듬성 남아
죽음 앞에 선 몸부림이 되었다
전하지 못한 말
맞추지 못한 눈,
고독한 회상과 뜨거운 후회들이
저마다 화려한 빛깔로 무르익어
가을은 가장 완전한 색으로
떠나갈 기회를 준다.
생의 마지막,
위태로운 촛불처럼 열병을 머금고서
뜨겁게, 뜨겁게
꽃은 부서진다.


눈물

나의 시선이 자꾸만 머릿속 잡념들로 향하려는지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내던졌다
이리저리 떠돌던 잡념의 시선이 아버지라는 애상에 머무르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내 얼굴에
슬그머니 슬픔의 빛깔 내려 앉는다
서리진 창가에 그 슬픔 비쳐
나의 시선은 그 슬픈 상념에 머물지 못하고
창 밖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부서지던 햇살이 따뜻하기만 하더니 어느새
길을 잃은 눈송이들 휘날린다
별안간 희미해진 실빛 사이로 날리더니
이내 창문에 곤두박친다
누가 널 이리로 데려왔니
너도 흐르고 흐르던 상념을 따라
슬픈 내게로 왔니
느닷없이 들이닥쳐서는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물이 되어 녹아버린다
슬픔에 머물기란 힘든 법이지
슬픔에 머물기란 참 힘든 법이지
초점이 당겨지더니
창가에 비친 얼굴이 온통 눈물 투성이다
버스 어디께 앉아 자꾸만 녹아내리는 눈을 닦아보지만
창문의 난 여전히 울고 있다
슬픔에 머물기란 힘든 법이지.


정진철
01093085889
goodness29@naver.com


Articles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