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외 4편

by 반추 posted Apr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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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당신의 허리를 한 손에 두르고는,
다른 한 손에는 파슬리와 샐비어, 로즈마리
그리고 그대와 닮은 백리향을 한 아름 안아든다.

여윈 마음을 이끌고, 그대의 앞에서 고백한다.

"그대와 나의 앞에는 만개한 바곳이 피어있노라.
나는 이토록 그대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이는 바곳의 독과도 같구려."

그녀는 희미하게 웃고는, 나의 손을 이끈다.
언덕으로 향한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나의 부끄러움 만큼
멀어지고 있다.





고양이

그녀를 보면 자꾸 침대가 생각난다.
이불 속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작고
하얗고
따뜻하고
둥그스름한
야트막한 언덕의
그 새하얀 도화지 위,
그녀의 어깨에 낙서를 한다.
이내 곧 간지러움에 몸을 뒤틀고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괜히 부끄러워하고는,
다시 서로를 끌어안고, 침대보에 몸을 묻고는,
아무일도, 있지도, 없지도, 한 것처럼 다시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햇빛 맞으면서 다시 침대에 뛰어들겠지.





너의 이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는 무기력하다.
너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너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너의 이름은 자유이다.






새장

누나의 집에 다녀왔다
수박과, 참외, 포도를 들고
누나를 만났다
 
여전히 멋들어지게 만들어지는 구름
누나는 언제나 멋있다
과일을 나누어 먹고는
 
늦은 밤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담소를 나누던 도중 잠이 들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누나가 나를 보듬어안고 있었다
어머니 같았다
 
향수의 내음이 좋았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잠에서 깨고나서, 옥상에 올라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넋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 오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누나다.
누나는
'이런 곳에 오면 안돼'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저 
'또 놀러오렴'
누나는 그리고 멋쩍은 듯 웃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하다.






무제

고양이 또는,
여인이 되고싶다.

티라미슈를 한손에 들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오전을 나른하게 마시고,

점심에는 샤워를 하고,
이불 속에 푹 눌러앉아서.
구름과자 하나 물고서,
그땐 그랬지라고, 피식피식하고싶다.

오후에는 대충대충 옷을 입고는,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한아름
사가서, 천천히 먹고싶다.

평범한게 좋은 것이지만,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서
쉽지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야한 농담을 건내고는 한다.
나중에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았으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밖에는 비가내려서
물방울이
몸부림을 치면서 떨어진다.
건반은 눅눅하지만, 소리는 좋기만 하다.

잘 시간이 되었다.
고양이 처럼 웅크리고, 화톳불 앞에서
불을 쬐면서
엄지손가락을 살짝 깨물고는 잠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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