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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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비 내리는 눅눅한 주말 아침.
시급 6000원을 받아 난 딸기 꼭지를 자른다.
흰 스티로폼에 헐떡이며 누워있는 딸기는 열을 높이며 야윈다.
날선 과도가 딸기의 속살을 헤집으면 그 뽀얀 속살을 뒤집어볼 연민이 생겨.
그들은 후덥지근한 비닐하우스에서 초록의 원시로 돌아갈 생각만 하였다.
뿌리를 잃은 날 흰 스티로폼에 담겨져 그들의 몸은 붉게 멍들지만
초록의 입새는 언제든지 뿌리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서슬파란 과도의 앞에서도 씨알마다 박힌 초록의 기억은 그의 꼭지처럼 생생해.
반투명한 비닐로 가로막힌 고랑을 넘어 투박한 자갈 틈새로 피우던 태초의 혼연함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빛을 잃어 죽어가는 그들의 초록이 흰 스티로폼에 수긍할 때 쯤
그들은 생생하지 못하다.
짓무르는 살덩이들은 붉게 흘러내린다.
난 그들의 초록을 따며 사그라드는 생명을 지켜본다.
내 손에든 과도는 총총이며 혼을 빼앗는다.
난 암묵할 뿐이다.
꼭지 따던 손에 피가 베인다.
붉게 물드는 손가락에 쓰라림은 느끼지 못한다.
두 손 가득 빨아들인 딸기의 피만이 저릿저릿하다.
그러나 난 손가락에 고인 죽은피를 핥을 뿐.
암묵은 처절한 방관의 외침이다.
개꿈
꿈자리가 좋아 복권을 샀다.
여섯 숫자에 귀를 기울이며 일주일을 기대했다.
토요일 오후 8시 45분이 되서야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바탕 꿈을 꾼 듯 제 자리를 잡기 어렵다 쥐고 있어야 할 돈뭉치는 나비와 같다.
난 희미한 꿈에 취해 다음 주 복권을 산다.
지갑에 남은 만원자리 한 장을 반 토막 내서 일주일치 허상을 산다.
그 안에서 나는 치밀하고 세세한 돈 놀음을 할 것이다.
토요일 오후 8시 45분.
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개와 같이 컹컹대며 붉게 물드는 노을로부터 멀어진다.
봄
청춘은 벚나무와 같아.
긴 추위와 가뭄 속에서 묵묵히 자라난다.
4월의 짧은 순간 꽃잎을 터트리며 만개한 봄날을 상상하지만 여윈 가지는 꽃잎에도 무겁다.
벚나무는 달을 넘기지 못하고 초라해져 진한 슬픔으로 다음 봄날을 기대한다.
달 빛 비치는 가지에 그림자는 더욱 앙상하다.
그러나 추위를 넘어서는 봄의 아스라함이 가지와 뿌리를 간질이면 긴 기다림에도 연연해할 꽃잎은 없다.
벚잎은 떨어질 때 비로소 아름다우니 우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사계절을 기억할 것이다.
까치집
500년 된 은행나무 위
탐스러운 까치집이 열렸다.
사람은 감히 기대지도 못하는 귀한 나무
이름 없는 까치는 부담 없이 살 테다.
만(灣)
바람이 만을 훑으면
흔들리는 갈대만 보여
그게 바람인양 가슴 설렐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