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시공모

by 永在 posted May 30,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거울

 

눈에 보이는 너는 못났다.

살찐 육신과 산발이 된 머리

텅 빈 눈동자는 죽은 듯하다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너를 마주하니

시리는 혐오와 불같은 분노가 나를 채운다

 

이제 너는 가고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통통한 몸과 짧은 머리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마주하니

부끄러움 만이 나를 가득 채운다 

----------------------------------------

늦벚꽃

 

벚꽃이 질 때 쯤 보러간 꽃놀이

너무 늦은 걸까

이미 다 지고 가지만 남았다

 

분홍빛 길 위를 혼자 걷다 마주친

한 아이의 독무(獨舞)

이제야 피어난 벚꽃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그 아이를 위해 모두가 져버린 듯

모두가 숨죽인 무대에

흩날리는 낙화의 춤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나도 아름답게 누구보다 아름답게

꽃필 수 있다고

------------------------------

매화

 

아직 추운날 너를 보았지

참 예쁘다 느꼈지만

너를 바라보고 있기에

내가 너무 추웠지

너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지

 

날이 풀리고 문득

네가 보고싶더구나

네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갔지만

너는 이미 지고 없구나

가고 없구나

------------------------------

흔적

 

한참을 걷다 뒤돌아본 곳에는 항상

내 흔적들이 있다

울긋불긋 물든 그곳에는 항상

내 흔적들이 있다

 

문득 흔적들이 밉다

내 발자국이 밉다

내 일기장이 밉다

내 손때 묻은 노트북이 밉다

 

지우려 해도 너무 깊게 물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내 후회들이 밉다


------------------------------------


청춘이란 말

 

조금 느리게 걷는 모습에

늦다 재촉한다

주의를 둘러보는 모습에

다들 뛰어간다며 구박한다

잠깐 쉬어가자는 말에

그럴 시간 없다며 다그친다

 

남들보다 느린 걸음도

들꽃을 바라보는 것도

나무 그늘에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잘못인 마냥

 

느리게 걸으며 느끼는 바람도 좋을텐데

문득 바라본 들꽃의 이름이 궁금한 것도 좋을텐데

그늘 아래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진 햇살도 좋을텐데

참 좋을텐데


-------------------------------------

이영재 

lyj372800@gmail.com 

010-7307-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