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묘비명
내 방에서 두 달 남짓 살다 간 금붕어에 대하여 쓴다
고향에서 유리되어 충동구매 후 곤란해진
구매자의 제멋대로인 사정으로 내 손에 넘겨졌다
그는 같이 온 동료가 따뜻한 향수를 이기지 못해
세 주 금줄을 넘기지 못하고 그리움에 흰 발병이 나서 떠나갈 때도
무엇을 꿈꾸었는지 차가운 현실의 수온에 몸 담그고 꿋꿋이 버텼다
그러나 그도 화병은 이기지 못했나 보다
동료의 향수병을 이어받아 염장질을 견뎌낼 때
투명한 유리벽에 몸으로 부딪히면서
몸 몇 번 뒤집으면 끝인 조그마한 세계에 절망했나 보다
망각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분노를 상상임신한 듯하다, 부풀어 오른 배를 보면
연약한 모체가 품기에 분노는 너무 강력했기에
모체가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낳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에
어항은 다행이라며 안심했을 수도 있다
평화로운 작은 세계가 깨지지 않아서
어리석은 물고기야 또 넣으면 되는 싸구려니까
어쩌면 모체 자체는 버틸 만 했지만
현실을 자각한 순간의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였을수도 있다
사인을 밝히기에는 메스 들이댈 몸집도 되지 않고
시검비가 더 나오는 하찮은 난쟁이라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렸다
자연사였는지 의문사였는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이었는지
허옇게 뒤집힌 눈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진실은 사체와 함께 구더기들에게 파먹히고 있다
서둘러 묻고 돌로 눌러버린 땅 아래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흙의 냄새는
생선의 공평하게 내리쬐시는 햇볕에
맛있게 구워진 악취였는데, 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의 짧은 생애를 지켜보았던 방관자의 자격으로
다만 나 역시 제멋대로인 추측을 할 뿐이다
묘비가 다음 세계에서는 어항을 뚫는 등용문이 될지는 역시 모르는 일이나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묘비명을 적고 발걸음을 돌린다,
감히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금붕어 이곳에 묻히다
2XXX년 X월 XX일
어머니 대지
대모신의 존재를 믿고 싶다면
가뭄이 온 땅으로 가면 된다
메마른 피부가 갈라져도
터진 틈이 육각형으로 꽉 맞물려
틈을 보이지 않겠다며 손에 손을 잡아도
몇 방울 참회의 눈물에
또 다시 몸을 풀고 배신당할 각오를 한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하다 했던가
그 위대하다는 수식어조차 충분하지 않은데
큐빅 귀걸이
꿈은 잘 때는 벗고 자야 한다
싼 모조품이나마 소중히 모으고 이어
세상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귓불을 뚫었더니
거스르면 죽는다는 무의식적 생존본능에 깔려
뒤척이는 몸짓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져
더 이상 걸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꼴이 되기 십상이니까
캠퍼스의 장미축제
따가운 햇살에
피어난 장미가 색이 바래는 6월
청춘으로 가는 레드카펫처럼
아스팔트 도로 위에 수북이 깔린 장미꽃잎을 밟으며
나의 열정은 피어난다
나의 장미는 야밤에 핀다
핏줄기에 흐르는 혈기가
넝쿨을 치고 휘감고 뻗어나간다
넘쳐흐르는 이 젊음을
어찌해야 좋을까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틀을 밝혀내려는
정치학자와 사회학자의 것이기도 하고,
역사를 이루는 개개인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학자,
역사를 결정한 선택들을 설명하려는 심리학자,
그러한 개인의 순간들을 포착해 예술로 기록한 작가와 화가,
인간의 역사를 무생물의 범주로까지 확장시키려는 공학자의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역사라는 것은 결국
개인들의 역사의 집합체일 뿐이다
즉, 역사는 나의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