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난치병' 외4편)

by 레홍 posted Jun 09,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난치병

우연히 
또는 실수로
네가 한 발짝이라도
내게 발걸음을 옮긴다면
난 틀림없이 널 앓을 것이다.

매일 밤낮으로 
네가 와주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내 병을 내가 치료할 수 없고
너 또한 날 살펴봐주리란 확신이 없으니

널 안을 수 없는 난,
널 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조심해다오



어제에서

촉촉했던 네 눈은 
호수같다기보다, 호수에 빠져있는 듯 애처로웠다.

그런 네 눈을 몰래 훔쳐보다 
이따금 이유모를 내 눈물도 훔쳤었다.

네 곁의 그는 떠났고, 너는 남아있다.

어제에 살고 있는 널 혼자 두고
나만 갈 수 없어,
내가 없는 어제에서 
넌 그제의 그를, 난 내일의 너를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시간은 뒤돌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더 빨리 흘러가지도 않는다

오늘도 시간은 둘을 버려두고
숫자만 넘길 뿐이다.



천성

너는 언제나 조금씩 늦는 나를 기다려 주었고
난 언제나 문 앞엔 네가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는 '아직'이냐고 묻지만
나에게는 '겨우'인 시간이다.

우리 집 앞산의 얼굴은 여덟 번 바뀌었고
추억할 만한 모든 것들이 변했지만
나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느리고
너에게 너무 게으른 옛사랑이다.



커버린 슬픔

나는 
자주
수시로 
운다
아마 키가 커버린 탓이다

세월이 쌓여 쌍꺼풀이 되버린 아빠의 눈윗주름
일할 때 꼭 묶어두어 얇아진 엄마의 머리카락
이젠 다 보인다 

어른이 되어도 덜 울지 않는 이유는 다 키때문이다
다 자란 사람들의 다 아물지 못한 슬픔이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하여

너의 날숨이 내 들숨이 되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 우리는 서있다.

우리의 간격이 마음을 시리게 하던 어느 날,
난 네게 고백하고 싶어졌다.

네 품을 향해 한 발짝,
"우리 친구잖아"

그때서야 발 아래 베어진 듯 그려진 선 하나를 보았다.
늘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분계선,
'친구'

그럼에도 나는 희망한다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저 선을 넘어, 네게로 달려갈 그 날을



홍선미
tellmeur6699@naver.com
010.3690.7350


Articles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