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차 시공모

by 금잔화 posted Jun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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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닦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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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꽃길 사이 공원을 닦고 있다

힘들게 들고 온 양동이 물 내려놓고

구부정하게 벤치를 닦고 있다

 

허공마다 들어있는 잊혀진 기억을 찾는 느린 걸음의

할머니가 한 귀퉁이에 유모차를 붙들고 앉아 있다

꽃길사이를 뛰는 술래들이 몰래 숨어버린 기척을 찾느라

올라섰던 발은 벤치 여기저기에 점을 찍어 놓고

못내 놓기 싫은 두 손 쥐고 있던 어깨를 포근히 감싸고

입맞춤하던 연인들의 입은 어둠을 타 떠다니고

어둠속에 몸을 숨긴 힘없는 가장의 한숨이

고개를 떨구고 벤치 한 귀퉁이를 누른다

다 피워 한이 없는 벚나무 몸을 털고 쏟아낸

하얀 환희가 상처 많은 자국을 덮고 있다

긴 하루는 공원의 여기저기에 자국을 내고

노을이 끌어오는 밤은 모두를 재우고

별밭을 풀어 놓는다

 

또 다시 하루를 여는 오늘은

또 하루를 새기려 어제를 밀어 낸다

포근한 쉼이 그리운 그녀가

지나간 자국을 정성스럽게 닦는다

그녀 머리위로 하얀 벚꽃 미사포가 씌워진다

그 집

 

그 집 바람이 사는 그 집

고개를 들어 제비가 세 들어 사는 집

소리도 하나씩 숨어 산다

숭숭 구멍 뚫린 대나무 숲 골목에

소리치며 푸드득 거리는 암탉의 소리

비료 푸대 깔고 미끄러지던 소리 하나

궁둥이 툴툴 털고 일어나 대문 밀며 들어선다

허리 굽은 편백나무가 대문 앞에서 오래 된 집을 지키고

부옇게 먼지 앉은 마루에 새똥만 올려놓고 있다

여름 날 물 끼얹으며 소리치던 뒤란 장독대

뭉툭해진 무화과 엉덩이만 남아있다

 

바람은 부드럽게 나무 위를 맴돌고

까치밥 매달고 흔드는 감나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울음을 지운다

끌어 올리던 밧줄 잃어 버린지 오랜 우물

김치 통이랑 참외 몇 개 질끈 매달았던 기억이

반쯤 메꿔진 채로 졸 듯 서 서

뒤로 숨던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 삐딱하게 문 매달은 화장실

무서울 까봐 흔들어 주던 그 문고리

문 뒤에서 불러주던 그 휘파람소리 듣고 있다

가누기 힘든 몸을 추스르고 가끔씩 들려주는

타향살이 이야기 칠이 다 벗겨진 대문이

바닥에 널브러진 지게 다리가 듣고 있다

주인 잃은 이야기에 젖어있다

 

도보여행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땅을 휘저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닥거리고 투둑거리는 적막을 줍고

엎드린 것들의 생을 쓰러뜨리고 일어서게 한다

코끝으로 전해 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들썩거려지는 어깨 더듬거리는 말

스치는 손끝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초록으로 물 드는 마음을 두드려본다

내미는 손 끌어당기고 흥얼거리는 속마음

비탈이 질 때 마다 지났던 일 곱씹으며

푸르게 흔드는 길로 눈을 보낸다

손톱만한 은행잎 연둣빛 미소가

들키지 않으려는 손짓을 보며 웃고 있다

냇물이 지나고 들길이 지나며 마을이 오고

들 향기가 오고 산 향기가 지나며

멀었던 마을이 한발씩 다가오고 지나간다

침묵이 흐를 땐 걸음만 숨 가빠지고

경치는 휙휙 자취를 감추고

끊겼던 말은 더듬거리며 괜한 호들갑이 일어난다

한가하고 포근한 마을이 또 지난다

오래전 있었던 무덤들도 웅얼대며 지나고

새때 푸르릉 거리며 가시덤불 들썩인다

벗어 던지려는 잡념이 잠시 스친다

빨라지는 길이 풀어 헤친다 고랑 진 마음을

또 다른 길을 잡는다 나와 그 사이길을

들꽃 웃음을 곁들며 길을 걷는다

 

솔향기길

 

만대 항 작은 포구 지친 고깃배들을 깨우며

새벽에 떠오르는 불덩이는 아침 여느라 바쁘다

더 바쁘게 산 오르는 이들은 파란 바닷물에

붉게 번지는 비늘에 환호가 넘친다

금빛을 낀 작은 산길에 허리를 맨 산이

밧줄을 붙들고 낭떠러지에 매달리고

간간히 매달린 물허벅 이정표를 붙이고

길 잃을 연인들의 갈 길을 연다

솔향의 산비탈을 내려 바다로 내려 설 때

날릴 인연은 미련 없이 솔숲에 날리고

해안선 모래 길에 발을 씻고 모래톱에서

흘리고 간 인연도 찾아본다

솔향기에 취한 바다가 취객처럼 걷다 보면

검은 돌을 뭉쳐 형제가 된 삼형제 바위

무공해 농산물 말려 보내준 막내 동생의 얼굴이

둥글게 녹여진 마음이 바다위에 둥실 떠 있다

해맑은 웃음으로 혈액암을 이겨 낸 듯

걱정하는 내게 많아서 보내준다는

크게 웃는 전화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온다

모래사장에 널어 아픈 것은 묻고 굽이진 돌틈마다

허옇게 붙은 굴껍질 속을 덜어 낸 아픔

순간으로 쓸려오는 밀물과 썰물에 옷 벗어 버린 여섬

내 그대처럼 옷 벗어 그대 안에 살고 싶은데

매달리는 마음 저 높은 당봉 전망대에 매달아 놓고

검은 바위들 사이로 가라앉는 해를 따라

꾸지나무 골로 내려간다

 

고시원

 

동네에는 도랑이 흐르는 빨래터가 없고

도랑물에 흘려보내던 말들만 무성하다

빨랫돌에 텅텅 두들겨 보내던 방망이

카타르시스가 팍팍 튀어 오르던

바람의 자국이 어디에도 없다

탱자 울타리에 하얀 꽃 피고 얼기설기

훼를 치던 구멍 뚫린 이웃이 없다

칸막이 한 장의 딱딱한 이웃

깨질 수 없는 독하나 품은 빨래들이

가느다란 골목에 촘촘히 박힌 문

돌팔매질 당한 팔뚝들이 나란히 누운 숨소리

어둠속에서 이빨을 숨킨 맹수 더 이상

쫓겨날 수 없는 삶과 삶이 섞여

버무러지는 동네

속이 비어 우울한 저녁이 모인다

한집 건너 한집이 흔들거리는

소리 없는 악 가슴 먹먹한 아가리들만

젖었다 마를 새 없는

축축 처지는 어깨를 낳고 있다

 

 

임옥희

miree12306@hanmail.net

010-9000-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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