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등껍데기의 달팽이
우리 집에는 거북등을
이고 있는 달팽이가 삽니다.
젖먹이 적, 그 등에 올라타
말 위에 앉은 듯
털썩거려봅니다.
이제와 퍽, 안쓰럽게 느껴져
내 등에 타보라고 슬프게
말해 봅니다.
거북등을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해 봅니다.
지금도 뙤약볕, 어디선가
벽돌 짐을 지고 계실
내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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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어르며
다소곳이 피어있는
꽃이 예뻐
한 송일 꺾어
조그마한 유리병에
넘치듯 물을 부어 꽂아두었다.
꽃의 낯빛이 점점 바래진다.
불꽃처럼 피어있던
꽃잎이 어느새 한줌
재가 되었다.
꺾지 않은 꽃들은
여전히 불꽃같음에
서막은 곧 결말의 시작인 것을
그리하여 당신을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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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못다 핀 꽃이지만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작열했던 작년4월
그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달력 장을 열두 번 찢어낸 지금
나 홀로 걷고 있습니다.
그때
꽃잎들을 다 쏟아내었던
나무는 또 다시 꽃을 피워냈건만
그대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네요.
내 눈에서
꽃잎들이 아지랑이처럼 쏟아집니다.
땅을 적시는 이 꽃잎들을
얼마를 흘려야
그대 귓가에 닿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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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벤치에 앉아
한줄기의 햇빛도 용납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주변은 온통 침묵에 잠겨있다.
무심코 가로질러간
잔디밭
밟지 마시오.
불현 듯, 지나친 푯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가 지나온 길 중에
밟지 말았어야 했을 길이
한둘이었을까..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걸으며
길게 뱉은한숨은
심란한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하네.
다른 잔디밭 앞에 섰다.
밟지 마시오.
푯말이 새로이 보인다.
이 잔디밭에는 아직 발자취가 없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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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가을
하늘 끝자락을
붉게 물들이며
뉘엿뉘엿 먼 산 뒤로
해가 얼굴을 숨긴다.
살랑거리는 가을의 속삭임이
추억의 조각들을 부른다.
꼭 지금의 하늘처럼
얼굴이 발그레했던 소녀
내 눈앞에 서있다.
긴 한숨에
그리움 하나 실어
던져본다.
속절없이 흩뿌려지는
낙엽들이 말해주어 기억나네.
그 소녀의 이름이
‘가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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